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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22. 2023

나이 소고小考

  우리 또래 사람들에게 가장 먹기 싫은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이”라고 할 것이다. 먹으면 줄어져야 할 것이 왜 먹을수록 많아지는 것일까. 그런데 많아만 지던 나이가 줄어들기도 할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세는 나이와 만滿 나이라는 게 있다. 세는 나이란 태어날 때 한 살을 먹은 다음, 설날 아침 떡국 먹고 일제히 한 살씩 먹는 한국식 나이다. 그래서 갑자년 정월 초하루에 태어났건 섣달그믐에 태어났건 모두 갑자생이다. 그것이 동갑이다. 섣달그믐 하루 다음에 태어난 을축생은 절대로 갑자생과 동갑이 될 수 없다. 364일보다 큰 하루다. 오래된 풍습이지만, 들쭉날쭉해서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불편 때문에 법적 효력을 가지는 나이는 대부분 만 나이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공적 생활인 학령, 공적인 생을 정리하는 공무원의 정년퇴직이 만 나이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거권, 피선거권도 만 나이고, 나이 들어 국가의 혜택을 받는 기초노령연금이나 “지공 카드”도 만 나이로 계산한다. 예방주사라든지 국가에서 행하는 일들도 알아서 만 나이를 적용한다. 공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보험 나이라는 용어로 사적인 보험을 드는 것도 만 나이다.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1년이 꽉 찬 나이, 만滿 나이. 그건 지금도 생활 속에 파고들며 제지분을 넓혀가는 중이다. 


  청소년 보호법이나 민방위기본법 등 어떤 법을 적용할 때를 위해 만들어진 연年 나이라는 것도 있지만, 태어나서 한 살을 먹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해가 바뀌면 한 살씩 먹는다는 점에서 세는 나이와 비슷하다.

이런 복잡함을 덜어보자고 올 6월부터는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한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그 복잡한 것들 속에서 자기 나이 세며 살아왔는데 법 테두리 외의 것까지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나이를 복잡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양력과 음력의 혼용이다. 우리나라는 1896년부터 태양력을 쓰기 시작했지만, 설을 비롯한 명절 등 생활 속 많은 부분이 아직도 태음력을 사용한다. 설이 왔다 갔다 하기도 했지만, 양력과 음력은 적당히 타협하며 자기들의 지분을 누린다. 그런데 해의 끄트머리나 첫머리에 태어난 사람이 문제다. 막냇동생이 경자년 12월생이다. 그것이 양력으로는 신축년 1월이다. 띠가 음력을 쓰던 때 만들어진 것이라 띠로는 경자생이 맞다. 그런데 올해도 양력 1월 1일에 계묘년이 밝았다고 했으니 어느 장단이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또래는 대부분이 호적에 음력 생일을 올린 세대다. 아버지가 일찍이 신식교육을 받으셔서 44년생인 오빠부터 7남매가 모두 양력으로 된 우리 집이 좀 특이한 경우이긴 하다. 내 생일은 음력 8월인데, 호적에는 양력으로 10월이다. 어떤 해는 하루 이틀, 때로는 한 달도 넘게 차이가 나기도 했지만, 상관없이 60년이 넘도록 살았다. 


  정년퇴직하는 해였다. 교사들은 학기에 맞춰 2월과 8월에 퇴직한다. 나보다 생일이 열흘 늦은 동료는 음력으로 등재되어 8월 말에 퇴직했고, 나는 10월로 등재된 양력 호적 따라 다음 해 2월에 퇴직했다. 내가 열흘이나 빨리 태어났지만, 퇴직을 6개월이나 연장받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양력이 보편화했지만, 호적은 음력으로 올리는 사람도 많았다. 큰아들과 조카딸이 20일 차이로 태어났다. 아들이 먼저 태어났는데 아들은 양력으로, 조카는 음력으로 호적에 올렸다. 법적으로는 조카가 누나다. 문서상으로는 아무런 문제없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그 나름 사연이 많은 것이다.

 

  우리 또래는 호적 나이가 본 나이보다 두어 살 적은 사람이 제법 많다. 영아 사망이 많기도 했고, 전쟁 탓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어.” 하고 당연시하기도 한다. 동갑내기 내 친구 둘은 같은 해 퇴직하면서 한 친구는 정년퇴직, 한 친구는 명예퇴직했다. 한 친구의 호적이 2년 늦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명퇴를 한 친구는 2년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더 받았다.


  거꾸로, 본 나이보다 호적이 이른 사람도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집안일을 돌봐주던 친척은 제 나이보다 두 살이 많았다. 언니의 사망신고와 자신의 출생신고가 생략된 채 죽은 언니의 호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같이 살 때, 나이에 대한 말을 삼가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호적이 잘못 등재되고 양력 음력으로 달리 올라도 사람들은 문서로 취급되는 나이와 실제 나이는 구분하고 살았다. 그건 규제의 범위를 벗어난 일이다. 그래도 굳이 법을 적용하겠다면 지키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이유 중에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로 세는 나이가 우리나라에만 있고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세는 나이뿐일까. 한복도 우리나라 사람만 입고, 한글도 우리나라 사람만 쓴다. 그것은 우리 문화다. 한국식 나이에는 생명 존중의 사상이 담겨있다고 한다. 서양의 실용주의는 태어난 순간부터 생명으로 인정하지만, 우리는 어머니가 태아를 품는 순간부터 생명으로 여기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과학적이고 사려 깊은가.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하고 그 열 달을 나이로 쳐준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가 두 아이를 품었던 열 달의 기억이 새로웠다. 태어나면서 먹는 한 살은 공짜가 아니다. 어미와 태아가 함께 버텨낸 시간에 대한 긍정이고 사회적 인정이다. 그 깊고 놀라운 생각을 자랑하지는 못할망정 남들이 안 쓰니까 버려야 한다고 하다니…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나이 때문에 혼란을 겪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외국 사람이 몇이나 나이로 인해 혼란을 겪었을까? 그들은 우리나라에 오면서 우리 문화에 그만큼의 예비 지식도 없이 왔을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식 나이에 맞추면 된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문화에 적응하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몇 안 되는 외국인의 불편 때문에 우리 전통과 문화를 허술히 여기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철학을 푸대접하는지 안타깝다.


  만 나이는 법정 단위고, 세는 나이는 문화다. 문화는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발전하고 그 생명력을 잃으면 쇠한다. 법으로 규제하지 않아도 사회가 품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 사라지는 것들이 아쉬워 애써 그것을 고집하는 몇몇 사람들이 남는 것도 문화의 특성이다. 청학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난 방명록을 쓸 때면 가끔 단기를 쓴다. 올해도 어쩌면 4356년이라고 몇 번은 쓸 것이다.


  노파심까지 곁들인다. 생일이 기준인 만 나이로만 세야 한다면 개인정보보호라는 첨예한 문제에 부딪히지나 않을는지… 상선약수 上善若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장수의 상징이던 회갑은 이미 시들해졌지만, 앞으로는 동갑내기라는 말도 사라질 것 같다. 대한민국이 젊어져서 좋다고도 한다. 그런데 올 설에는 떡국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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