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낭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무릅쓰고 그 강독(책과 독법(讀法)에 관한 강독회)을 이렇게 책으로 묶어내는 이유는, 이 책이 다른 책으로 가는 다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작은 기대 때문이다.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 작가의 말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편독이 심한 편인 나는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비문학 중에서도 인문학을 주로 읽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선물 같은 여유가 주어졌던 그해, 평소보다 책 읽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쓴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 했고, 광고 카피라이팅이나 작사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와 관련해서 여러 책을 찾아 읽던 중 광고인 박웅현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읽게 되었다. 광고 카피는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는지 도움을 받을까 해서 고른 책이었는데, 카피에 대한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그냥 책에 푹 빠져버렸다. 당장 이 사람이 쓴 책은 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 길로 나는 도서관으로 가서 박웅현 작가의 책을 모조리 빌려다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은 도끼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다른 책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작가는 이전의 박웅현과 이후의 박웅현을 다르게 만들어 주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책을 읽으면 사물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고도 했다. 비단 책뿐만 아니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촉수를 모두 열어 놓아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라고 했다. 기계적인 지식만을 위해 책을 읽지 말고, 다독 콤플렉스에서도 벗어나서, 단 한 권을 읽더라도 머릿속의 감수성을 깨우는 도끼 같은 책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을 읽은 후 판화가 이철수를 처음 알게 되고, 김훈을 다시 읽는 계기가 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대한민국에서 불어로 된 글을 가장 아름답게 번역하기로 유명하다는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부터 장 그르니에의 ≪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지중해의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손철주의 ≪인생이 그림 같다≫와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그동안 한 번도 관심 두지 않았던 동양미술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 책에서 언급한 책의 목록을 쭉 적는다. 그중 제일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골라서 바로 이어서 읽는다. 읽는 중에 만나게 되는 책 목록을 적었다가 또 이어서 읽는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만날 수도 있다. 그중 유난히 더 나를 붙잡아 당기는 책을 만나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중2 딸아이와 그 또래의 친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보이 그룹의 노래를 플레이 리스트에 담고 매일 듣는 것처럼 나는 나에게 울림을 준 책을 한 권 한 권 쌓아서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간다.
이런 책 읽기는 나같이 편독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좋은 처방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역사책으로 이어지고, 역사책은 다시 예술 분야로 나아간다. 예술 분야 책에는 소설책이 나오고, 그 소설 속 주인공은 인문학책을 읽는다. 인문학책 속에서는 많은 고전을 만날 수 있다. 처음 읽는 책이 어떤 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시작만 하면 다음 책으로 계속 이어지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된다.
최근에 읽은 배지영 작가의 ≪남편의 레시피≫는 식구들을 위해 밥을 하는 남편 이야기였다. 내가 요리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음식 이야기보다는 작가의 중학생 막내아들에 더 관심이 갔다. 대한민국 남자 중학생이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독서라는 사실도 놀라운데, 중학생 아들을 눕혀놓고 책 읽어주는 엄마라니! 나도 당장 초등 5학년 아들의 머리맡에 앉아서 목소리가 갈라질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싶어졌다. ≪남편의 레시피≫를 읽으면서 노트에 적은 10개 남짓의 목록 중에서 ≪동희의 오늘≫과 ≪순례주택≫을 골랐다. 아이의 호응은 기대하지 말자 다짐하면서.
책을 한번 읽어보겠다 마음먹었는데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어오는 사람에게는 일단 주위에 있는 아무 책이나 한 권 읽어보기를 권한다. 세상에 좋은 책은 넘쳐나고, 첫 장을 넘길 잠깐의 시간만 있다면 그다음은 저절로 되는 거니까.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