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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혼타스 Oct 22. 2023

낯선 도시에서 여유롭게 글 쓰는 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

여행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을 좋아한다.

‘어디로 갈까, 언제 떠날까, 누구와 함께할까, 얼마나 머무를까?’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계획 단계부터 설레던 마음이 여행 중에 즐거운 것은 당연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얼마간은 행복감으로 가득하니 모든 여행은 가성비가 좋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라는 말에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여행지를 정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항공권 예약이다. 스스로에게 기필코 떠나고 말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보통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는다. 온갖 여행 관련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늘 그렇듯 영상보다는 활자가 더 좋다. 예전에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책을 많이 읽었다면 지금은 그곳에 오래 머무른 사람들이 쓴 책을 주로 읽는다. 짧게는 한 달 살기 한 경험부터 결혼이나 취업으로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얼마 전 ‘기록하는 방법’ 강연에서 ‘여행일기’를 알게 되었다. 표지에 여행의 목적지인 도시명을 적고 머무는 동안 그 노트 한 권을 여행에 대한 기록으로 채우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느낌을 짧은 글로 남겨도 좋고, 그림이 그려진 입장권이나 우연히 구매한 엽서를 붙이는 것도 좋다고 했다.

지나간 여행들은 흐릿해지기는 해도 여간해서는 지워지지 않는 머릿속 기억과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사진은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여행 중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진을 찍게 된다. 여행을 기록하기에는 사진만큼 쉬운 게 없겠지만 매 여행마다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십여 년 전 그 당시에는 생소했던 여행 산문집이라는 장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병률 작가의 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였다. 하늘색 표지가 예뻐서, 하얀색 글씨로 쓰인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이었는데 좋아하는 장르가 하나 추가되었다. 목차도 페이지도 없고, 낯설어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친근한 사진은 넘치게 많은, 시인 듯 산문인 듯 모호한 책이 너무나도 좋았다.   

목말라서 죽을 것 같은 상태도 싫고 누군가와 눈빛도 나누지 않는 여행자가 되는 것도 싫다고 말하는 작가는 낯선 나라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물(水)’이고 다음은 ‘고맙다’라고 했다. ‘물’은 나를 위한 말이고 ‘고맙다’는 누군가를 위한 말이라고. 그래서일까? 책에는 작가가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방으로 인터넷 케이블을 가져다준 예멘의 무함메드, 비행기와 공항을 너무 좋아해 일주일에 두어 번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산책을 나오는 할아버지, 실의에 빠진 아버지가 혼자 홍콩을 여행하면서 찍었던 사진 속 장소를 찾아가 똑같이 혼자 서서 사진을 찍은 앤드류. 원래도 따뜻한 사람들이었겠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로 가득한 책이었다.

책을 다 읽고 안 사실이지만 이병률 작가는 시인이었다. 시인이 쓰는 문장이라서 아름다운 것일 수도, 시인이 찍는 사진이라서 애틋한 것일 수도, 시인이 하는 여행이라서 특별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책을 읽고 또 읽다 보면 나도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부시게 맑은 날 카페에 앉아 커피 한 모금에 글 한 줄 쓰는 모습이나 늦은 밤 호텔 방에서 하루를 가만히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이후로 여행 작가들이 쓴 책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고 나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미 가본 곳은 가본 곳대로 가보고 싶었던 곳은 또 그 나름대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도 처음 읽었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만큼 가슴을 울리는 책은 없었다. 떠날 날을 기다리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이든 여행을 망설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심지어 여행에서 막 돌아온 사람에게도 선물한 책은 언제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였다. 여행 전이어도, 여행 중이어도, 일상으로 돌아와서 읽어도 좋을 책이니까. 

책에서 만나는 여행 작가들의 삶은 사무치게 부럽고 비록 짧은 여정이더라도 낯선 도시에서 여유롭게 글 쓰는 여행을 항상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일행이 있는 여행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어차피 혼자 하는 여행은 당분간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강연에서 배운 ‘여행일기’를 쓰기 위해서 다음 여행부터는 노트를 한 권씩 챙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여행을 앞둔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할 때 예쁜 노트 한 권을 같이 건네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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