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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혼타스 Oct 22. 2023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통창 너머로 앞마당이 훤히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카페는 한산했다. 지난밤부터 내리던 비가 그칠락 말락 하던 차였다. 노랑 우비 입은 꼬마가 엄마와 나들이 나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카페 앞마당이 색색의 우비를 입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투명 비닐 우비를 입은 젊은 선생님 세 명도 함께였다. 

한 선생님이 커피 주문을 한 뒤 야외 테이블에 꽃무늬 가재 수건을 펼치고 컵 여섯 개를 나란히 엎어놓는 동안 나머지 두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한 아이가 얕은 물웅덩이에 멈춰 서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재밌어 보였는지 금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손바닥으로 웅덩이 물을 찰박찰박 치는 아이도 있었다.  

비에 젖은 벤치도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잇감이 된다. 어차피 우비를 입었으니 그냥 앉아도 될 텐데 아이는 양손으로 여러 번 쓱쓱 문질러 물기를 닦아내고서야 폴짝 올라앉는다. 우비와 같은 색으로 맞춘 장화를 신은 발을 연신 앞뒤로 흔들어 대는 모습은 너무 귀엽다. 앳돼 보이는 선생님이 아이 옆으로 앉더니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여가며 벤치 위의 물기를 닦아내는 시늉을 한다. 노랑 우비, 파랑 우비 속 작은 엉덩이도 선생님을 따라 좌우로 움직인다. 서로 눈 맞추며 나누는 얘기는 들리지 않지만 행복한 입 모양만 봐도 큰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테이블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각자의 컵으로 얼음물을 한 잔씩 마시더니 어린이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삼십 분 남짓이었을까.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 얼굴은 즐거움으로 한가득했다. 선생님들도 잠깐의 나들이가 재밌었는지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던 때가 생각났다.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가정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때라 어린이집에서 회사까지는 차로 삼십 분 정도가 걸렸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놓고 돌아 나오기까지는 항상 시간에 쫓겼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를 어르고 달래기에 아침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거의 매일 나와 떨어지기 힘들어했다.   

아픈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해야 하는 날은 더 참담했다. 점심 물약, 가루약, 해열제를 각각 작은 병에 나눠 담고 알림장에 복약 시간을 빽빽이 적어야 하는 아침은 속상함을 넘어 서글펐다. 평소보다 더 칭얼대는 아이를 선생님에게 뚝 떼어놓고 모질게 돌아 나와서는 출근하는 차 안에서 혼자 많이도 울었더랬다. 아이는 어렸고, 젊은 엄마는 서툴렀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힘든 나날도 한 해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며 ‘그땐 그랬지’하고 편하게 꺼내 볼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지나와 생각해 보니 어린이집 현관에서 나와 떨어지기 싫어 운 날에도 막상 어린이집 일과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놀지 않았을까? 비 내리는 어느 날에는 저 아이들처럼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겠지?   

이제는 “애들 다 커서 좀 쉽지 않아요?”라는 말을 종종 들을 정도로 두 아이 모두 힘든 시기는 훌쩍 지났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어린 대로 커서는 큰 대로 각 때에 맞는 새로운 어려움이 있다지만 생존을 걱정하던 아기 때에 비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시기에 고달픈 육아 여정을 함께한 동지들에게 자주 책을 선물한다. 간절함의 크기에 비례해서 아기가 찾아오는 시기가 결정된다면 좋으련만, 부모 준비를 모두 마친 부부의 간절한 기도는 종종 외면당한다. 어렵게 찾아온 귀한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는 기쁜 소식에는 아기 옷보다는 책을 먼저 선물한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엄마 품에 안겨 보내는 아기에게 들려주면 좋을 그림책 몇 권과 엄마, 아빠가 읽으면 좋을 책 한 권을 함께 선물한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한글을 뗀 아이가 더듬대며 읽기에도 좋고, 한글을 일찍 떼서 그림책을 시시하게 여기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읽을 만한 그림책으로 몇 권 골라서 엄마, 아빠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과 함께 선물한다.

그림책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달라지지만 부모를 위해 선물하는 책은 항상 ≪어린이라는 세계≫이다. 이 책은 동네 책방 선생님 추천으로 처음 만났다. 그림책을 자주 사는 나에게 책방 선생님은 가져가서 읽어보라며 ≪어린이라는 세계≫ 책을 주셨다. 책을 그냥 받을 수는 없어서 사겠다고 말씀드려도 본인이 읽던 책이니 그냥 가져가서 읽어보고 다시 가져오라고 하셨다. 책을 펼쳐보니 중간중간 선생님 손글씨로 적은 메모가 붙어있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라 그 책을 처음 읽을 때의 느낌이나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쉽게 술술 읽혀서 단숨에 읽었던 것과 꽤 한참 동안 잔잔한 울림이 있었던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다음 주말에 바로 책방으로 가서 새 책으로 몇 권 사 왔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주변 엄마 아빠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선물하기 시작한 것이.

추천의 말은 항상 똑같다.

“처음에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읽는데, 다 읽고 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내 아이에게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

왼쪽 신발 끈을 혼자 묶을 수 있는 현성이 이야기에서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기다려 주는 어른’이 되어야지 마음먹게 되고, ‘잉여생산물’과 ‘물물교환’이라는 시장 논리를 설명하는 선생님에게 “나눠줘요!”라고 답하는 하윤이를 보며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어른인 내가 할 일이구나!’라고 다짐하게 된다. 

예비 부모도, 한창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부모도, 아이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고 여가를 즐기는 중년의 부모도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어린이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산다 여기는 싱글족,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를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다정한 어린이라는 세계로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의 세계는 넓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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