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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숨어서 먹는 아이-2

by 은빛영글

손가락이 바빠졌다. 상처 사진과 핏자국을 사진에 찍어 맘카페에 올려 자문을 구하고 빠르게 달리는 댓글에서 키워드를 찾아냈다. 밤에 긁는 아이, 아토피, 피부 간지러움, 기묘증, 피부 건조. 습진, 종류도 다양하다.

즐겨 찾는 공구 카페와 SNS에 키워드를 넣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한 사진과 정보 속에서 주하와 비슷한 사진을 찾아내는 데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주하가 벗어놓고 간 잠옷과 이불에 묻어있던 붉은 핏자국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어두운 갈색빛이 되어 있었지만, 은서의 손가락은 여전히 바빴다.

인스타그램으로는 DM을 보내고, 블로그는 쪽지를 보냈다. 맘카페에 글을 올리고 다른 이들이 올린 게시물에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답을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모든 게 다 있는 SNS의 세상에 답이 없을 리 없는데. 초조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하원 시간이 다가올수록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주하의 하원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키즈노트 알람이 떴다. 아이가 다리를 불편해하고 쓰라려했다고 걱정하는 선생님의 메모를 캡처하고 활동사진을 다운 받았다. 사진 찍으면 무조건 예쁘게 나오는 원피스라고 타이머까지 맞춰 놓고 힘들게 공구한 옷인데 후기 사진으로 쓸만한 게 없다. 아이의 표정은 죄다 울상이었으니까. 사진 속에서 주하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엄마가 열심히 검색 중이니까, 조금만 참아.'

마침 도착한 노란 버스에서 내리는 주하는 깡충깡충 뛰어오는 대신 다리를 절뚝거리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은서를 보자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원피스 밑으로 곧게 서 있는 흰 스타킹엔 갈색 핏자국이 새어 나와 있었다.


아이울음.jpg


“애가 저 지경인데, 소아과든 피부과든 데려갔어야지 그냥 두면 어떡해?”

“그냥 둔 거 아니야. 아토피에 좋은 크림 공구한대서 알람 맞춰놨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아이의 상태를 확인 한 남편은 크게 화를 냈지만, 은서는 당당했다. 이미 얻은 정보를 취합해 해결방법까지 찾아놨으니까. 하지만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나빠졌다.

“또 그 SNS 타령이야?”

“믿을만한 사람이야. 엄청난 인플루언서라고. 그 사람 팔로우가 몇 명인 줄 알아?”

“그 사람이 의사냐고!”

“아토피에 약이 어디 있어. 음식 조절하고 보습 잘해주면 되는 거야. 당분간 우리 주하는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건 먹지 말자. 엄마가 아토피에 좋다는 영양제랑 크림 공구해서 주문해 놓았으니까 이제 좋아질 거야. 먹을 것만 좀 신경 쓰면 돼.”


아이는 엄마·아빠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아토피에 좋다는 음식이 쌓여있는 식탁 앞에 앉아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연신 다리를 긁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내복 바지 밑으로 갓 자리 잡은 딱지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서걱서걱. 집에서도 예쁘게 해준다는 내복 위로 붉은 피가 스며들며 아이의 손끝까지 물들였다.




남편은 더 이상 은서와 말을 섞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은서는 무언의 동의라 여겼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둘이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도착한 크림은 공구 페이지에서 본 것처럼 케이스조차 감성적이었다. 후기를 위해 식탁 위에 올려둔 채로 연신 카레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 주하는 길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냉장고를 열었다.

“안 된다고 했잖아!”

냉장고에서 요플레를 꺼내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나 간식 먹고 싶어.”

“며칠만 참아. 요플레는 아토피에 안 좋댔어. 이거 엄마가 우리 주하 주려고 산 건데 아토피에 좋은 영양제래. 식물 성분으로 만든 거라고 하니까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이런 거 말고 아이스크림이랑 초콜릿 같은 거 먹고 싶어.”

“안 된다고 했지!”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 아이는 시무룩해졌다. 주하의 입꼬리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따위 관심 없는 그녀는 아이의 손바닥 위에 영양제를 올려놓고 먹는 모습까지 사진을 찍고 난 후에야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영양제를 쥐고 있던 아이의 반대 손은 다른 곳을 긁고 있었다.


분명 SNS에서는 아토피 아이들의 피부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차도를 보였는데, 은서의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무릎 뒤에만 긁던 것이 온몸으로 번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얼굴은 긁지 않았지만, 어깨를 타고 목 위까지 올라오는 걸 보니 슬슬 불안해졌다.

'아이가 아토피가 있는 것 같아요. SNS에서 공구로 산 크림을 발라줬지만, 효과가 없어요. 남편의 눈치도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급한 마음에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 때 답답한 마음을 토해내는 그녀의 대나무 숲 같은 공간이다. 아이의 사진을 첨부한 덕분일까, 조회수는 엄청났다. 다들 유명한 피부과나 한의원을 추천해 주고 자신의 아이가 사용하고 효과를 봤다던 연고 이름을 적어주는 정성까지 보여줬다. 대부분이 당장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다. SNS에서 산 성분 모르는 크림을 함부로 바르지 말라는 댓글을 보니 화가 나 글을 삭제해 버렸다.

'멍청한 여자들.'

잘하고 있다는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어 적은 글에 오히려 분노를 얻었다. 마치 무속신앙에 전 재산을 퍼붓는 여자 취급하는 댓글에 불쾌해졌다. '


피로.jpg


아이는 밤새 긁어대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그건 은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결에 긁는 아이의 손목을 밤새 꽉 잡고 있었다. 간지러움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아이는 해가 뜰 무렵에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니 어린이집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엉망이 된 수면 패턴 덕분에 첫째 아이마저 매일 지각이고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었다.

“아이고, 피부가 왜 이래?”

지나가는 어른들이 한 번씩 던진 말 한마디는 모이고 모여 아이의 키보다 덩치를 키웠다. 그럴수록 은서는 SNS에 더 매달렸다. 매일같이 배달되는 택배 상자에는 각종 영양제와 크림이 들어있었지만, 밤마다 흐르는 아이의 피와 진물을 닦아줄 수 있는 건 업었다.

주하는 똑바로 걷지 않았다. 어디서 누가 나타나 피부를 걱정해 줄지 모르기에 늘 경계했고 특히 뒷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팔이 접히는 부위, 무릎 뒤, 목덜미를 숨겼다. 좋아하던 놀이터조차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오직 방에 처박혀 긁어댈 뿐이다.

‘혹시 사기 아니야?’

불현듯 겁이 났다. 다시 SNS를 열어 게시물을 살펴보니 몇백 개의 댓글에는 아이의 아토피가 좋아졌다는 후기가 여전히 감사함을 표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다들 좋다고 난리인데 왜 주하는 좋아지지 않지?’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저 빨리 해결되길 바랄 뿐이었다. 첫째를 등교시키고 잠들어있는 둘째 곁에 잠깐 누웠다가 깊게 잠이 들었다. 밤새 긁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둘은 달콤한 시간을 가졌다.

바스락바스락. ‘집에 쥐가 있나.’ 어디선가 작은 들렸다. 조심스럽고 은밀한 소리였다. 누군가 등을 찰싹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번쩍 떠졌다. 당연히 옆에 자고 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불렀더니 바스락 소리가 멈췄다. 아니, 더 빨라졌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해졌다.

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나가봐야 했다. 서둘러 나간 주방의 모습은 피범벅 된 침대처럼 처참했다.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뒀다고 생각했던 초콜릿이 전부 꺼내져 있었다. 초콜릿뿐이 아니다. 치즈, 과자, 젤리. 아토피가 나으면 주겠다고 숨겨둔 것들이 이미 아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게 뭐야?”

다급하던 바스락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울먹인다. 과자가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녀를 향해 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아이의 손끝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익명게시판]

엄마 친구 딸이 해외여행을 보내줬대요. 엄마 친구 아들은 차를 바꿔줬대요. 솔직히 제 친구 중에는 그런 애들이 없거든요. 도대체 엄마 친구는 어떤 사람들이길래 죄다 유니콘 같은 자식을 키웠는지 모르겠어요. 뭐가 됐든 엄마는 꽤 부러운 눈치였어요. 거짓말이 아닌가 봐요.

흥. 그렇게 따지면 저도 할 말 많아요. 누구 엄마는 남편한테 기죽지 말라고 용돈을 찔러준대요. 누구 엄마는 나가서 머리 식히고 오라고 아이들도 봐주고요. 저도 부럽다 이거에요.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만의 삶을 살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고요. 하지만 모든 것은 엄마가 먼저 시작했거든요? 흥칫뿡!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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