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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숨어서 먹는 아이-1

by 은빛영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3대 요소는 ‘조부모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력’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조부모의 경제력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아빠의 무관심은 완벽하게 준비됐다. 그렇다면 남은 건 엄마의 정보력이다. 조부모의 부족한 경제력을 커버할 수 있는 건 결국 정보의 싸움뿐이다.

‘정보 수집이라면 자신 있지.’

친구들과 여행 갈 때도 근처 관광지나 맛집 리스트를 준비해 리스트를 만들고 이동 수단에 따라 동선을 짜던 은서는 누가 봐도 파워 J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최적의 시기였다.


#엄마표책육아 #홈스쿨 #거실공부 #책으로아이키우기 #갓생엄마


즐겨 찾는 인플루언서들의 해시태그를 좇았다. 그들처럼 살고 싶었으니까.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은서 역시 그들처럼 완벽한 모양새를 갖출 거라 믿어 꾸준히 그들을 팔로우했다. 커뮤니티에서 아이와 트러블 있는 엄마들의 고민이 담긴 글은 자신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정보력의 차이. 그들과 어깨를 견줄만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었다. 엄지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SNS에 텅 빈 하트를 채웠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조각을 쫓아 집을 찾아갔던 것처럼 하트를 쫓아가다 보면 모두 은서의 존재도 인정해 주리라 믿었다.

그들의 피드에서 본 것처럼 TV를 없애고 그 자리에 전면 책장을 놓았다. 남편의 거센 반발은 중요하지 않다. 거실 육아의 기본은 전면책장이니까. 도와주지 않을 거면 방해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남편이 주로 이용하던 소파도 중고 마켓에 처분하고, 그 공간은 감성적인 디자인의 긴 책상을 뒀다. 어떤 책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올만한 디자인이다. 마치 SNS에서 봤던 것처럼 아이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책도 읽고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은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겠지? 그 풍경을 담기에 적합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은서의 집에 놀러 온 이웃들을 거실을 보며 감탄했고, 그럴수록 그녀의 어깨 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올랐다.


빨래2.jpg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조차 혈육 관계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친자 검사 확실하게 하게 될 테니 괜히 ‘욱’하지 말고 전문가의 손을 빌리라 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감이 한껏 솟아오른 은서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완벽한 엄마의 해시태그에 그런 말 따위는 없었으니까.

‘입시생도 아닌데, 유딩과 초딩의 공부쯤이야.’

자신 있었다. 밤마다 SNS를 뒤지며 충분히 정보를 모았고, 정보망을 가동해 출력해 놓은 활동지는 웬만한 문제집보다 두꺼웠다. 하루 종일 클래식과 영어 음원을 틀어 놓은 집은 한순간도 조용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활동지를 푸는 동안에도 은서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열심히 하트를 누르며 정보를 수집했다.


“너 바보야? 이걸 왜 몰라?”


분명 SNS에서 본 아이들은 재밌어했는데 이상하다. 은서의 아이들은 울상이다. 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혹시 학습지를 잘못 뽑았나 싶어 저장해 둔 피드를 다시 뒤져봤지만 분명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엄마표공부. 사진 속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다. 가르치는 방법이 문제일까? 그럴 리가 없다. 게시물에서 본 대로 했으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한참을 고민해도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어렵지 않은 것도 아이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상대를 이해하지 않았으니, 상대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작은 아이들은 엄마의 눈치를 보며 울먹일 뿐이다. 자신감만큼 치켜 올라간 눈썹은 도무지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엄마, 이거 꼭 해야 해?”

“엄마 좋자고 하는 거 아니잖아. 다 너희를 위해 하는 거야.”

“놀이터 가면 안 돼?”

“자, 여기 보고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찰칵!”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입에서 나온 말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영어 음원과 함께 공간을 맴돌았다. 그 와중에 인증사진을 빼먹지 않는다. 코끝이 빨개진 아이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학원 가기 싫다 난리였지만, 은서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친구들처럼 선생님이 상냥하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학원에 다니는 게 마음이 편했을지도. 엄마가 선생님이 된 공간은 아이에게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온통 비난하고 무시하는 말이 가득한 시끄러운 공간일 뿐이다.




은서는 흔히 학군지라 말하는 지역에 살지 못해 그 점이 항상 아쉬웠다. 열정이 있는 엄마들은 자동차 뒷좌석에 아이를 태우고 다소 거리가 있는 학원가까지 라이딩을 다녔지만, 대다수의 아이는 동네 보습학원이나 학습지 그것도 아니면 지박령처럼 놀이터에 하루 종일 머무는 동네였다. 어린 시절의 은서가 그랬던 것처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시간에도 놀이터는 온통 붐볐다. 물론 놀이터도 간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은서의 아이들은 인증사진만 찍고 집에 가서 학습지를 해야 한다.

어쩌면 열등감이었을 수도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해 평생을 숨겨왔던 마음을 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욕심 말이다. 나처럼 되지 않길,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랐다. SNS 속 엄마들을 쫓아가다 보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학력 이야기 앞에 작아지는 마음 같은 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건 절대 욕심이 아니다. 단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일 뿐이라 여겼다.

당연하지만 은서의 삶 속에 은서는 없었다. 온통 누군가를 흉내 내기에 급급했으니까. 아이들이 입는 옷부터 가구, 학습지, 동화책, 여행지, 심지어 먹거리까지. 전부 누군가의 게시물에서 봤던 것들이 모든 것을 대신했다. 자신이 지워진 게 아니라 스스로 지워버린 셈이었지만 당장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 모든 게 '갓생(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을 합한 신조어로 열심히 살아내는 삶을 의미한다)'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라 여겼다. 성장통 없는 삶은 없으니까. 분명 언젠가 모두 은서를 이해하고 고마워할 거라 믿었다.


벅벅벅.

어둠 속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유일하게 긴장을 풀고 엄마와 엉켜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분명 모두 잠을 자고 있어 조용해야 할 시간인데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종이가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각사각 연필이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자꾸만 내려앉는 눈꺼풀을 살짝 올려보니 막둥이 주하가 다리를 긁고 있었다. 소리가 한참 전부터 들렸던 게 이미 오래 긁은 것 같은데, 쉬지 않고 업데이트되는 SNS처럼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긁은 자리를 긁고 또 긁고 계속 긁었다. SNS에서 공구로 산 예쁜 잠옷을 허벅지까지 올리고 연신 긁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벌써 모기가 나왔나.’

SNS에서 모기 패치 공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에 만난 풍경은 모기 패치 따위로 해결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처참했다. 내 아이가 좀비가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손끝과 닿았던 곳은 모두 빨간 얼룩이 생겨있었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를 위한 잠옷과 잠자는 시간을 더 편하게 해준다던 이불은 밤새 주하가 긁으며 뿌려댄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혹시 건조했나 싶어 엄마들이 아이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던 보습제를 듬뿍 짜서 잠이 덜 깬 아이의 상처를 피해 조심스레 문질렀다. 작고 가냘픈 다리가 잠결에 움찔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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