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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엄마라 미안해-2

by 은빛영글

작은 구멍이 생긴 댐은 손가락으로 막을 수 없다. 구멍을 틀어 막아봐야 다른 곳에 금이 가고, 결국 전체가 터져 버린다. 그럼에도 온몸으로 구멍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결국 터져버린 댐은 지원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미친년 널뛰기하듯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면역력에 좋다는 음식 재료를 잔뜩 사와도 요리하기 전에 체력이 달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이들 하교 알람에 눈을 뜨고 나면 밀려오는 무기력함과 우울함에 물컹해진 재료들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엄마가 아픈데 너희들 알아서 못 하냐고 되레 화를 내기도 했다. 지원을 둘러싼 모든 것이 자신을 병들게 한 것 같아 거슬렸다. 혼자만 아픈 게 억울해 누구라도 좋으니 함께 수렁에 빠지자고 머리채를 쥐어 끌어 내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잡히는 게 없어 더 화가 났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잡히는 게 없다. 허공을 헤매던 빈손은 불과 몇 달 전보다 눈에 띄게 야위어 있어 손가락을 움켜쥐고 가슴을 두들겼다. 아프고, 아프다.

사춘기 소녀처럼 잔뜩 예민해졌고 옷깃만 스쳐도 화를 냈다. 이유도 모르고 혼이 나 시무룩해진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미안하다는 말은 화장실에서 입을 틀어막은 채 울음과 함께 삼킬 뿐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공간이 고작 화장실이라니, 서러움이 밀려와 또 울었다. 10년 넘게 살았지만, 마음껏 소리 내 울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이놈의 집구석. 입술 사이로 빠져나갔을 지원의 곡소리는 닿았을까.


“왜 내가. 왜 나한테. 나보고 더 이상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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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일상은 떠밀려 가는 파도에 올라타 함께 가자며 지원을 잡아끌었다. 못 이기는 척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흔들림을 온몸으로 느끼는 동안, 차라리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엉망이 된 일상에서 지원을 향해 손을 흔들고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차라리 눈을 감았다.

너무나 소중한 아이들이지만 지금 지원에게는 너무나 벅찬 존재다. 마음껏 아파할 수가 없으니 무겁고 무서웠다.

‘조금만 쉴게.’

달그락달그락 그릇 움직이는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렸다.




정신이 들자, 머리카락부터 만져봤다. 주삿바늘이 꽂힌 손등이 뻐근했다. 마취 상태에서도 꿈을 꾼 건지 혹은 그 새 습관이 된 건지 자고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잘 있나 부터 확인했다. 남편이 여전히 빨간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누가 보면 술에 취한 줄 알겠네.’ 농담을 던지고 싶었지만, 바짝 마른 아랫입술은 윗입술과 엉켜 떨어지지 않았다.

‘살아있구나.’

잔뜩 취한 것처럼 머리가 몽롱하고 몸이 무겁다. 몸에 연결된 주삿바늘을 통해 진통제가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팠다. 움직일 수가 없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리고요. 결과를 보고 치료 방법을 결정하도록 할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푹 쉬세요.”

좀 웃으면서 말해주면 덧나나. 여전히 로봇처럼 건조한 목소리의 의사였지만 지금은 그 목소리마저 반가웠다. 대답할 기운도 없어 눈만 끔뻑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애들은?”


입술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대답도 듣기 전에 다시 잠이 들었다. 모처럼 깊고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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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달그락 소란한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조금 가깝다. 징그럽게 지겨웠던, 그렇지만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얼굴들이 달려와 여백 없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환자복을 입고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어색하고 무서울 법도 한데, 개의치 않고 안긴다. 손을 뻗고 싶었지만, 눈물이 먼저 흘렀다. 지금은 울어도 괜찮을 것 같아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지원의 모습에 아이들이 따라 운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익명게시판]

얼마 전에 유방암 걸렸다고 글 썼던 사람이에요. 오늘 병원에 입원 했답니다. 내일 수술하거든요. 우선 수술 결과를 보고 치료 방법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솔직히 너무 겁나요. 태어나서 애 낳을 때 빼고는 입원해 본 적 없거든요. 무섭네요.

맥주 한 캔만 딱 마시면 긴장이 풀릴 것 같은데, 안 되겠죠? 병원 편의점엔 맥주도 안 팔고 슬픕니다. 만약 내일 수술이 잘못되면 오늘 못 마신 맥주가 한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혹시라도 내일 수술 끝나고도 안 깨어났는데 누군가 이 글을 보면 어떡하죠? 마지막으로 쓴 내용이 이따위라니. ㅋ



(이미지 출처 :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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