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픈 엄마라 미안해-1

by 은빛영글

“예상하셨겠지만, 암입니다.”


차라리 AI가 더 상냥하지 않았을까? 사각사각 귓가에 파고드는 건조한 목소리에 꾹꾹 눌렀던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담당 의사의 말처럼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막상 결과를 들으니 덤덤할 수 없었다. 어쩌면 오진일지도 몰라, 큰 병원에서는 웬만한 건 병 취급도 안 하니까 ‘수술할 정도는 아니니 추적 검사 합시다. 6개월 후에 다시 오세요’ 정도의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하늘은 이번에도 지원의 편이 아니었다. 십여 년 전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빠를 데려갔던 것처럼, 지원의 어린 시절이 온통 아파 누워있는 엄마만 존재했던 것처럼. 다시 그녀를 괴롭혔다.

“제가 왜요?”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지원의 말에, 곁에 있던 남편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 표정, 본 적 있다. 화를 참거나 눈물을 참을 때 나오는 얼굴, 그는 늘 감정을 참는다. 뿌리를 깊게 박은 소나무처럼 항상 강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한다.


남편눈물.jpg


엄마처럼 되기 싫었는데.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엄마가 자꾸 생각났다.

지원의 유년기 엄마에 대한 기억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에 핏기 없는 얼굴로 종일 누워 있다가 지원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앙상하게 마른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잘 다녀왔냐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엄마의 손끝은 몹시 차가워 가끔은 소름 끼치기 무서웠다.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의 회색빛에 전염될 것 같아 애써 외면했었다.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 기억에 담벼락을 쌓으려 노력했다. 담배는커녕 술도 마시지 않았고, 시간을 쪼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음침한 회색빛이 혹시라도 파고들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벽을 쌓았다. 두 아이 모두 돌 지나서까지 모유 수유를 하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며 알록달록한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엄마, 외로웠겠다.”


가녀렸던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울고 싶었다. 건들면 파스스 부서져 사라질 것 같았던 뒷모습은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거센 바람에 파도가 쓸려 들어오듯 애써 모른척했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그립고, 보고 싶다.

아플 거면 혼자 아프지 왜 나도 아프게 낳았냐고 따지고 싶기도 했고, 핏기 없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사과하고 싶기도 했다. 이제부터 벽을 부순다고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닌 걸 알기에 울음을 삼킬 뿐이다.




벌떡벌떡 잘도 일어서던 오뚜기도 중심을 잃으면 앞으로 고꾸라진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면 반대로 쓰러지기도 한다. 지금의 지원이 그랬다. 자꾸만 고꾸라지는 몸을 일으키려 커피를 마셨다. 조금만 무리하면 소화가 되지 않아 먹은 음식을 전부 토해냈다. 단순히 체했거나, 조금 이른 갱년기가 아닐까 했던 것들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고꾸라진 오뚜기는 의지만으로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그래도 일어서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지원의 회색빛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아이들과의 하루하루를 무지갯빛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망했다. 밥솥을 데우던 시퍼런 불꽃이 지원의 한숨을 타고 춤을 췄다.


‘암이래요. 유방암이요.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나서 걱정이에요.’


막연히 머릿속에 공포와 걱정이었던 것들을 게시판에 글로 적어내니 형태를 갖춰 한층 큰 두려움이 되었다. 차라리 몸을 좀 움직이지 싶어 옷장 문을 열자 제때 정리하지 않고 대충 쑤셔 넣었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터져버린 쓰레기봉투처럼 엉망이 된 것들의 모습은 지원의 상태와 같아 보였다. 풀썩일 때마다 퍼지는 고독한 곰팡내에 깔린 열 개의 발가락이 유난히 앙상해 보였다. 언젠가의 엄마의 손가락처럼.


“엄마, 나 20년만, 아니 10년만. 아냐 딱 5년만. 제발.”


아이들의 결혼식 날 아빠 옆자리에 빈 의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 아들이 제대하는 날 좋아하는 치킨 잔뜩 사주고 싶은데 안될까? 아니, 초등학교 졸업식까지 만이라도. 아직 어리잖아. 친구들 엄마를 보며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듣는 이 없는 중얼거림은 방언이 터진 것처럼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손.jpg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의료 기술이 좋아져서 괜찮을 거예요.’

‘유방이랑 갑상선은 암도 아니래요.’


지원의 글에 달린 댓글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은 굉장했다.

40대쯤 되면 얼굴이고 지갑 사정이고 상관없이 머리카락 많은 놈이 승리자라던데, 여태껏 걱정 없던 지원의 자신감이 뿌리째 흔들렸다.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는 꿈을 꾸었고, 아이들 앞에서 쓰러지는 상상을 했다. 수술 결과가 안 좋을까 봐, 수술 후에 깨어나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밥알을 씹는 동안에도 아이들 숙제를 봐주는 동안에도. 일상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상상은 공포가 되어 지원을 집어삼켰다.

잘 만들어진 블럭처럼 반듯하게 살아온 지난 삶마저 부정하고 싶었다. 한 번쯤은 술에 잔뜩 취해 술주정을 부려볼걸. 담배 한 번 피워볼걸. 사실 조금 궁금했는데. 가끔은 애들 떼놓고 외출이라도 할 걸 그랬네. 지난번에 사고 싶었던 옷 그냥 사버릴걸. 남편이 싫어해도 해보고 싶던 머리 스타일 해볼걸. 히피펌 해보고 싶었거든. 한 번쯤은 시어머니에게 대들어 볼걸. 큰 애가 세모눈을 뜬다고 한숨 쉬지 말걸. 자다 깨 화장실 가기 무섭다고 우는 둘째 다그치지 말고 같이 가줄걸.

수많은 ‘걸’이 지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것에서 시작된 억울했던 ‘걸’은 해주지 못해 미안한 ‘걸’이 되어 모든 것을 후회하고 아쉬워했다.

일상이 유지될 리가 없었다. 깨어있는 시간 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있는 줄도 몰랐던 상처를 깨닫는 순간 쓰라린 통증이 느껴진다. 조금 불편한 정도라 여겨졌던 모든 것들도 존재를 알게 된 날부터 엄청난 통증이 되었다. 은퇴 후 삶의 목표를 잃은 아버지들처럼 텅 빈 눈동자가 되었다. 지난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일어나야 했다.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이미지 출처 : 언스플래시)

keyword
이전 26화시어머니가 윗집에 산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