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임신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던 지인 K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전 직장으로부터 복직 제안을 받았다. 휴직이 아니었으니 재취업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엄마들조차 가장 많이 회사를 그만두는 시기인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복직이라 그녀는 고민이 많았다. 첫째 아이도 걱정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어린 둘째 아이도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사까지 맞물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을 상황이었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강했다. 놀이터를 점령하고 작은 손에 휴대폰을 들고 학원으로, 집으로 야무지게 잘 다녔다. 이제 K만 돌아갈 회사에 적응하면 될 일이었다.
K는 순한 사람이다. 처음 만났던 날도 특유의 순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고, 다른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 뒷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쪽 이야기도 들어봐야지.'라든가, '뭔가 사정이 있겠지.'라며 함부로 말을 보태지 않는 이였다.
복직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K가 되물었다.
"본인 MBTI 알아요?"
방송이며 아이들이며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MBTI에 관해 이야기했기에 나 역시 검색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문항이 길어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그냥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젊은 직원들은 가장 먼저 MBTI를 물어보더라고요."
@픽사베이
'라떼'는 말이지….
친구들과 각자의 작고 귀여운 용돈을 모아 '우리 오빠들'이 나온 잡지를 함께 사고 필요한 부분을 정성껏 잘라낸 후에 너덜너덜해진 잡지 뒷면을 들춰보곤 했다. 군데군데 이가 빠진 잡지를 뒤로 넘기다 보면 '혈액형별 이달의 운세'라든가 '별자리별 애정운' 따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A형, B형, AB형, O형으로만 나누었던 간단한 분석은 '어떻게 인간이 4가지 성향만 있니?'라고 하면서도 행운의 날짜나 색상 따위를 선명하게 기억하려 애썼고, 조금 더 좋은 운세를 따라가기 위해 음력으로 양력으로 생일을 바꿔가며 별자리를 살피곤 했다.
이에 비해 MBTI는 인간의 유형을 16가지로 나눈다고 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는 나라도, 문화적인 환경도 모두 제각각이다. 외모도 체형도 목소리도 전부 다르지만, 이 모두를 16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고작 4가지 혈액형으로 인간의 유형을 나누었던 라떼에 비하면 상당히 세밀하고 분석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의 아이가 마시던 음료수를 내밀었다.
"네가 먹던 거잖아."라는 나의 말에 "내가 입 댄 거지만 괜찮아. 엄마도 A형이니까."라고 답하며 씨익 웃는다. 굉장한 인심을 쓰고 있다는 것처럼. 똑똑한 줄 알았던 요즘 초등학생들도 저런 바보 같은 합리화를 시키는구나 싶어 웃음이 터졌다.
'혈액형이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입에 들어갔던 게 다시 음료수병으로 들어갔잖아.'라고 답하지는 않았다. 부처 같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엄마는 괜찮아. 너 많이 마셔."라고 살며시 밀어줬을 뿐.
그렇다. 나는 라떼 시절에 소심함과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콘 A형이다. 그리고 K의 지도로 끝까지 해낸 MBTI 결과물은 당연하지만 I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