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학교 입학 원서 작성 시즌이었다. 동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의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인근 세 개의 중학교 중 한 군데를 반드시 1지망으로 써야 하는 반강제성을 띠고 있었다. 오가며 얼굴을 보는 엄마들의 인사말은 '1지망 어디 쓸 거예요?'였다.
세 군데 중 한 학교는 나머지 두 군데 학교의 학생 수를 더한 것보다 많은 학생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지원자가 가장 많았다. 늘 그래왔듯이. 나의 아이도 당연히 그 학교에 지원할 거로 생각했다. 친구들이 많이 지원하니까.
하지만 아이의 선택은 달랐다.
동아리가 많은 학교도, 교장선생님이 열정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도 아닌 작은 학교를 선택했다. 의아했다. 6학년 전체 중 10명 남짓한 수가 지원하는 학교를 고르다니. 아이의 선택을 전적으로 지지하리라 다짐했지만 아쉬움과 걱정이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친구들 다 A 학교 지원하는데, 너만 B 학교 지원하는 거잖아. 괜찮겠어?"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응, ㅇㅇ도 ㅇㅇ도 전부 A 학교 지원한대."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듯 덤덤하게 아이가 답했다.
"근데 넌 왜 B 학교 지원해?"
"A 학교는 애들이 너무 많아."
"애들이 많은 학교가 재밌을 텐데. A 학교가 낫지 않아?"
끊임없이 A 학교를 지목하는 우리에게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 나 i야."
웃음이 터졌다. 그래. i 심은 곳에 i 나오는 게 당연하지. 복잡 복잡한 A 학교보다 시골 학교처럼 오붓한 B 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너무나 확실했다. i가 이유라면, 그건 절대 이해한다.
언젠가 한적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간 적 있었다. 오른쪽 발끝에 힘을 줘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나의 오래된 SUV는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흔들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까만 무리가 보였다. 얼마큼 떨어져 있는지 본래의 색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온통 까맣게 보일 뿐이었다. 누가 알려준 걸까, 전체의 형태는 거대한 화살표 같기도 했고, 그들이 가는 곳을 향한 이정표 같기도 했다. 빠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양이 제법 근사해 웅장하기까지 했다.
철새의 무리 뒤쪽에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뒤처진 그 녀석은, 가장 어린 녀석일지 혹은 약한 녀석인지 모르겠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퍼덕이는 그의 버거운 날갯짓은 허공에서 주춤대다 금세 무리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 모습이 꽤 마음에 쓰였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겠지,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할 테니까. 힘겹게 꽁무니를 쫓아오는 이의 속도까지 신경 쓰지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고작 두 발로 땅바닥에 서 있는 게 전부인 인간이지만, 하늘을 날고 있는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 초조했다. 가녀린 두 다리로 종종거리는 것보다 더 빨랐을 날갯짓이, 어쩌면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의 다급함에 응원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단단한 땅의 덩어리가 나를 붙잡아 쫓아갈 수 없으니, 부디 그대는 무사히 도착하길 기도했다.
다가올 입학식, 벌써 긴장하는 내 아이의 떨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끔은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무려 6년이나 되는 초등 생활이 고작 한 달 남짓 남았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두 학교를 졸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한 개의 학교에서 보낸 시간과 같다. 하지만 지낼 시간이 짧다는 게, 걸어야 할 길의 길이가 짧다는 건 아니다. 그들이 짊어지게 될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그 길을 먼저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감히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그저 품어내기에 벅찰 만큼 자랐을 때, 그때를 잘 알고 보내주는 것이 내게 남은 숙제겠지.
낯선 공간에 가면 한껏 주눅이 들어 한참을 살펴야만 발을 들였던 나의 아이.
이웃 주민이 인사를 건네도 엄마 뒤로 고개를 숨기던 나의 아이.
학기 초마다 아프고 힘들어하길 반복했던 나의 아이.
그럼에도 매일 제 몸만 한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던 너의 작은 어깨를 기억해.
오케스트라 공연이 너무나 긴장되었다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네 가녀린 손가락의 떨림을 알고 있어.
수업 시간에 손을 드는 것보다,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게 먼저인 너의 상냥함이 좋아.
각자의 속도대로 날갯짓할 나의 아이야. 너의 i가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도 있을 거야. 꽁무니에서 앞선 무리의 속도가 힘에 부치면 가끔은 내려와 두 발로 서있어도 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길을 택해도 괜찮아. 네가 가는 길이 곧 너의 길이 될 테니까.
섬세하고 소극적인 너의 i는 언젠가 너의 듬직한 벗이 되어 줄 거야. 지금의 나처럼.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