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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Dec 18. 2024

낯선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

항상 학기 초엔 긴장이 됐다. 방학 동안 소원해진 친구들과의 만남에 설렜던 게 여름방학이라면,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얼굴들과 새로운 공간에 섞이게 될 것에 대한 걱정이 있던 게 봄방학이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시작과 두근거림의 상징이었던 '봄'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내게는 공포와 긴장이었다. 익숙한 것에서부터 떠나야 하는 두려움이었다. 겁이 난다고 도망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그저 이미 만들어진 길을 고분고분 따라갈 뿐이었다.

새학기가 그 정도라면, 새 학교는 어땠겠는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열다섯 개의 통에서 바둑돌을 섞어 다시 열다섯 개의 반을 나누는 게 고작이었던 것보다 더 큰 통이 필요했고 더 많은 바둑돌이 섞여야 했다. 당연히 더 큰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3월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을 호소하며 집에 있는 엄마를 호출하는 옆집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대체 얘는 누굴 닮아서 그래.'라며 원망 섞인 말을 웅크린 채 들어야 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서 잠금해제 하듯,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밀면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담임 선생님이 누가 될지, 교탁과 멀지 않지만, 너무 가깝지도 않은 이왕이면 사각지대쯤에 빈자리를 찾는다. 이미 누군가의 가방이 놓여 있는 자리를 피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담임 선생님이 미리 자리를 배정해 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눈치를 살폈다.

일부러 흐린 눈으로 교실을 살폈다. 혹 엉뚱한 아이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호기심 어린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다행히 익숙한 얼굴이 내게 손을 흔들어 아는 척을 해준다거나 옆자리를 내준다거나 하면 일이 훨씬 수월하다. 길 잃은 아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지나가는 행인 1'이라도 괜찮다. 당시 나의 긴장감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무리에 들어가고 그들 속에 뿌리를 내렸다. 특별히 튀지도, 모나지도 않게 스며들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썼고 그럼에도 적당한 틈을 벌려 누군가 파고들 자리 또한 마련해주었다.

같은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교실에 섞이고, 그중 대다수와 같은 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게 섞인 아이 중 같은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 졸업식까지 함께 한 아이가 있었던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걸 보면 적당히 섞이고 틈을 내어주는 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특별히 뾰족하지 않은 성격 탓에 어쩌면 수월했는지도 모르겠다. 뾰족하지 않은 건지, 애써 둥근 척을 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후는 조금 달랐다. 익숙한 얼굴과 대학, 직장까지 함께 할 수는 없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나는 것이었고, 그중 하나는 나 자신이었으니까. 내게 먼저 손을 들어주는 친구를 찾기보다는 이제는 먼저 손을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쉬울 리가 없잖아. 나는 i이었으니까.

어찌어찌 대학 생활에도 적응했다. 전국에서 섞인 바둑돌들이 자신의 색을 내보이며 비슷한 색을 찾아가는 동안 나 역시 무리를 찾아 헤맸고 하나의 통 속에 섞였다. 조금은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다. 이제는 i라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 비슷한 기분도 들었다.


"어머님 고향이 어디시니?"

짝을 지어 과제를 내주던 교수가 내게 물었다.

"전주요."

"전주에 유명한 게 뭐지?"

"음, 전주비빔밥?"

"그럼 전주에 가서 비빔밥 먹고 와."


교수는 학생들 각자에게 모두 다른 과제를 주었다. 도대체 이런 게 우리 수업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주제를 던졌다. 엉뚱한 소재를 던져주고 그것을 경험하여 글로 써오라고 했다. 하와이라고 할걸.

교복을 입던 시절엔 조별 과제라 해봐야 삼삼오오 모여 신문이나 도서관 자료를 뒤졌던 게 전부였다. 과제는 핑계고 결론은 떡볶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난 후의 과제는 조금 달랐다. 직접 어딘가 찾아가고 토론하고 제법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고작 학교 운동장이나 도서관 정도였던 공간에서 벗어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지도를 보며 찾아가야 했다.

조금은 이상한 과제 역시 내겐 설렘이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였다.


짝꿍이 된 친구와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조금 일찍 나온 탓에 터미널에서 그를 기다려야만 했다. 빠르게 오가는 사람들의 커다란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저이의 굳은 표정은 누굴 만나러 가는 길일까, 혹은 누굴 만나고 돌아오는 길일까.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톡톡, 조심스레 나의 어깨를 건드렸다. 오마이갓. 파란 눈, 금발 머리, 커다란 키. 낯선 얼굴은 심지어 국적까지 낯선 사람이었다. 아마도 길을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멈춰 있는 내가 그의 레이더에 포착이 되었나 보다.

그의 입이 움직이는 것보다 내가 움직이는 게 더 빨라야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는 결국 내게 말을 걸어왔고, 기껏해야 시간을 물었다. 하지만 그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대신, 나는 낯선 국적을 가진 낯선 사람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귀까지 달아오른 얼굴로 양손을 흔들며 '몰라요.'라고 했던 것도 같다. 어쩌면 그 말조차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냥 도망쳤다.

민망함 그리고 낯선 이와의 예정에 없던 만남. 모든 것이 만들어낸 심박수는 순식간에 솟구쳐 올랐고, 빠르게 나타난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미안함이었다. 어쩌면 그도 용기를 내 말을 걸었을 텐데, '코리아 나빠요.'라는 이미지를 가지면 어떡하지, 하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낯선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도망쳐 버린 내가 너무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 알려주는 게 뭐 어렵다고.'

그래, 주입식 영어교육의 폐해라고 하자. 글로 배운 영어가 입 밖으로 꺼내려니 어려웠겠지, 하며 자위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에서 도망치고 싶은 비겁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변명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 그 사람. 나한테 한국말로 물어봤다."

이런 바보 같은 i.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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