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얼굴에 긴 속눈썹을 가진 귀여운 내 친구 미라.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쭉 같은 반이라 자연스레 나와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던 미라. 예쁜 얼굴과는 달리 엉뚱한 모습이 많아 같이 있으면 계속 웃게 되는 재밌고 사랑스러운 내 친구.
일 나가시는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미라를 돌봐주셨는데 놀러 가면종종 할머니께서 라면을 끓여주셨다. 그때마다미라는 꼭 찬물을 반컵 정도 부은 후 라면을 후루룹 먹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러면 라면이 빨리 식어 뜨겁지 않고 물 덕분에 덜 매워진다는 타당한 이유를 댔다. 맞는 말 같아 호기심에 나도 미라와 똑같이 컵에 담긴 물을 라면 그릇에 휙 부었다. 맛을 보니 어머나, 정말 미라 말대로 적당히따뜻한 온도와싱거운맛이면서도 매운 느낌은 확 줄어있고 면은 오히려 쫄깃해졌다. 매번 라면을 먹으려면 혀를 길게 빼고 연신 헥헥 쓰읍 쓰읍 거리며 라면 한 젓가락, 물 세 모금 들이키느라 물배가 빵빵히 차곤 했는데.찬물 반컵으로 뜨거움과 매움 두 마리를 잡아주다니 일석이조 아닌가. 나도 집에 가서 꼭 이렇게 해 먹어야지 결심하고 어느 날 라면에 물을 부어 먹다가 엄마한테 된통 혼났다.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먹을 거면 먹지 말라고하시길래 미라는 이렇게 해서 먹는다니까 네가 미라냐고 하셨다. 차라리 찬물을 그릇에 따로 담아면을 헹궈 먹으라 하시는데 나는 암만 생각해도 내 친구 생각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아닌가.
어느 날은 학교 앞에서 구입한 병아리를 벼슬이 조금 난 중병아리 상태까지 키웠다며미라가자기네 집 복도에서 이 아이를던져진짜로 나는지 같이 보자고하는 거다.병아리가 혹시나 잘못될까 살짝 걱정을했지만 미라네는 2층이라 땅에서 그리 많이 떨어지지는않았고 나 또한 궁금한마음이 커서 그러자고 했다. 미라는 두 손으로 병아리의 엉덩이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복도 바깥으로 팔을 쭉 뻗더니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외치듯 "창문을 열어다오~" 노래를 부르며 병아리를 위로 휙 던져 올렸다. 깜짝 놀란 병아리는 날갯짓을 쉼 없이 해대더니 땅으로 슈욱 안착했다. 우린 까르르 웃으며 1층으로 내려가서 병아리를 쓰다듬으며 참잘 날았다고 연신 칭찬을해주었다. 혹시라도 병아리가 잘못 됐으면 어쩌려고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는지. 그땐 한 치 앞도 생각지 않는 폭주 기관차 같은 아이들이었다.
미라는 병아리 날리기에 성공을 해 연신 신이 나 있었다. 그러더니 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혹시 샤프심을 먹어 봤냐는 거다. 샤프심은 샤프에 넣어 글 쓰는 거 아니냐고, 먹을 수도 있는 거냐고 묻자 먹는 건 아닌데 자긴 먹을 수 있단다. 그러더니 해보라고도 안 했는데 입안에 쑥 집어넣고 오도독오도독 심을 몇 번 부러뜨리더니 꿀꺽 삼키고 입을 '아' 벌렸다. 정말 입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미라는 진짜 없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혀까지 요리조리 굴려대며 봐봐 진짜 먹었지,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맛이냐고 묻자 그냥 샤프심 맛이란다. 먹어 본 적 없는 샤프심 맛은 어떨까 무척이나 궁금했지만,자랑삼아 몇 번 더 샤프심을 먹다가목에 걸려 컥컥 대는미라의 모습에 호기심은 순식간에사라져 버렸다. 나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자 미라는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선택의 자유는 맘껏 보장되는 친구 사이었다고나 할까.
미라는 참 똑똑한 아이였다. 나는 학교 시험이 있는 기간이면 대비 문제집을 풀었고 자꾸 틀려 부모님께 혼나가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런데 미라는 밤이 늦도록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고 놀았다.따로 공부를 하는 것 같지도않았고 딱히 본인도 시험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실 초등 저학년이 시험 걱정을 해봤자 얼마나하겠냐만 어쨌든 미라는 유유자적 텅 빈 놀이터를 지켰다. 그런데도 신기한 점은 시험만 보면 항상 미라가 1등이었다. 분명 어젯밤에도 놀기만 한 미라인데. 내가 봤고 우리 엄마가 보셨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 친구는 천재였구나. 공부한 나는 그럼 뭐가 되냐 이 친구야, 가 아니고 똑똑한 미라가 그저 신기하게 보였다. 나는 엄마가 어렵게 구하신 엄청 무겁고 두꺼운 문제집을 다 풀고 갔어도 1등은 못했는데, 학교 수업도 건성으로 듣던 미라는 100점이라니 내 친구는 진정한 똑순이었다. 엉뚱한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매력쟁이 내 친구가 그래서난 참 좋았다.
함께하던 시절 동안 다투기는커녕바라만 봐도 그저 좋고 편하고 깔깔깔 재밌기만 했던 우리. 어떤 이야기도 받아주고 들어주고 어디든 같이였던 우리. 미라가 있었기에 내 꼬꼬마시절이 진정으로 행복했고, 친구란 이렇게 정겹고 기분 좋은 존재라는 걸 가슴으로 듬뿍 느낄 수 있었다.인생에서 이런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감사하게도 유년시절의 미라가 그런 친구였고, 그렇기에 잊을 수 없는 그녀다. 미라 덕분에 지금까지도 학교, 회사, 아이 친구 엄마, 글쓰기 동기들의 인복이 계속 이어져 온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 미라에게감사할 일이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와 맺어진사람들과의 인연이참 소중하다.
우리 인생에는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인연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인연들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거나, 때로는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성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