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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May 17. 2024

남동생과 싸우고 나면 꼭 이걸 했더라?

"야!!! 너 왜 그랬어, 어?!!!"

"누나가 잘못한 거잖아, 왜!!!"

"뭘 내가 그랬다고 그래? 자꾸 따질 거야, ?"

"누나가 자꾸 화를 내잖아, 왜 그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내가 뭐라고 하면 꼼짝도 못 하던 동생이 이제는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 앞뒤 안 맞게 얘기해도 누나의 화난 얼굴에 졸아서 "미안해,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 누나." 라며 손을 싹싹 비비며 사과하던 애가 많이 똑똑해졌다. 무턱대고 나한테 빌지 않고 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내 동생이 달라졌어요.

분명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현명하고 지혜로워진 게다. 독서의 큰 힘을 저 때 뼈저리게 느꼈달까. 이제 말발로는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3년이나 더 먹은 키와 덩치를 이용해 힘으로 누를 수밖에.

"아야 아아아아아!!!!!!!!!!"

식탁 의자에 앉아서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는 동생의 머리채를 움큼 부여잡고 그대로 뒤로 넘겨버렸다.

꽈당!!!

동생은 의자와 함께 쿵 소리를 내며 고대로 주방 바닥으로 넘어갔다. 

"으앙!!!!!!!!"

동생이 운다. 끝까지 안 지고 버티더니 우니까 속이 좀 후련해진다. 동생은 뒤통수가 아픈지 연신 손으로 문지르며 엉엉 계속 울었다. 속이 상한지 동생은 안방으로 들어가며 쾅 소리 나게 방문을 닫아버렸다. 방에 들어가서도 동생이 계속 우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심했나.


시계를 올려다보니 엄마가 집에 돌아오실 때가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어쩌나. 싸운 걸 아시면 우리 둘 다 엄청 혼날 텐데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한담. 머리를 빠르게 굴려본다. 아 그래. 화해를 해야겠다. 그런데 동생이 많이 화난 것 같은데 화해를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 계속 저러고 있다가 동생이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을 엄마께 말씀드리기라도 하는 날엔 더욱 크게 혼날 텐데 정말 큰일이다. 어쨌든 동생을 달래는 게 급선무다. 마음은 자꾸만 조급해졌고 급하게 고안해 낸 방책은 쪽지로 화해하기. 소위 지금 말하는 떡메모지를 엄마는 전화기 옆에 항상 두시 통화할 때마다 주요 내용을 메모하셨는데 바로 그게 눈에 띄었다. 한 장을 뚝 떼어 안내장을 적었다.

알립니다.
누나와 화해하고 싶으면 3시까지 거실로 나오세요.
화해하고 싶지 않으면 안 나와도 됩니다.

-누나가-


똑똑!

문을 두드린 뒤 아래쪽 좁은 틈새로 화해의 쪽지를 쓰윽 집어넣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과도 아니고 일종의 접선쪽지였다. 대신 선택권은 전적으로 동생에게 있는, 나름 공정한 내용의 쪽지였다. 3시가 다 돼간다. 아직 엄마가 시면 안 되는데, 우리가 완벽히 화해를 한 뒤 오셔야 하는데 불안해서 오금이 저렸다.

드디어 3시. 안방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다.

3시 10분. 여전히 조용하다.

동생은 결국 나와의 접선을 거부한 것인가. 그래, 화가 날 만도 하지. 하지만 바락바락 대들기만 한 너는 잘했냐. 미안함이 90프로였는데 동생이 화해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쓰윽 방문이 열렸다.

"누나!"

"어?  화해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아, 나 잠들었나 봐. 이제 깨서 나왔어. 3시가 넘었네? 미안해."

"아... 그랬구나. 그럼 이제 나랑 화해하는 거야?"

"응"

"미안해, 누나가 잘못했어. 아까 많이 아팠지?"

"아니야, 내가 자꾸 신경질내서 미안해, 누나."

우린 대화를 하며 점점 울먹이기 시작했결국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꺼이꺼이 울었다. 동생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다 불룩 튀어나온 혹이 만져졌다. 못된 누나 같으니. 아무리 그래도 동생 몸에 상처를 내냐, 고약하다. 동생이 대드는 게 그리도 꼴 보기 싫었냐고요, 어리다, 어려. 쯧쯧.

물론 그 당시엔 그런 나를 탓할 줄도 몰랐고 그냥 미안함 마음에 감정이 복받쳤던 것 같다. 사랑하는 동생이랑 악다구니로 싸운 상황이 너무 슬펐나 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울다 잠든 동생도 너무 가엽네. 혼자서 꺼이꺼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눈물과 후회의 화해의식을 마치고 우린 세상 다정하고 사랑 넘치는 남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도 조심하고 배려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남매가 되었다.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오신 엄마는 까르르 웃으며 재밌게 장난치며 놀고 있는 우리를 보시곤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맛있게 저녁을 차려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신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참 좋았을 남매의 전쟁은 그 이후로도 서너 차례나 더 발발했고,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화해의 쪽지를 넣고 약속 시간에 접선해 서로 안고 울고를 반복했다. 한두 번 하면 그만할 법도 한데 딱히 집에서 공부할 것도, 숙제도 없는 우리 남매는 서로 아껴주며 잘 지내다가도 엄마만 안 계시면 그렇게 싸우면서 우애를 다져 갔다. 생각해 보면 동생이 먼저 잘못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철없고 할 일 없는 누나가 한심했던 것 같다. 매번 화해하러 나와준 착한 동생에게 오히려 고마워했어야 하는  아닌가. 부모님 다음으로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동생인데 얄미운 건 왜 그리도 용서가 안되던지.



형제자매가 없는 딸아이는 이런 다툼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인지 내가 동생과 다툰 이야기를 들려주면 귀여운 동생이랑 왜 싸우냐며 나를 타박한다. 하지만 형제끼리 싸우고 화해도 해보며 집에서부터 또래끼리의 다양한 감정교류와 더불어 사회성을 길러가는 것도 중요할 텐데. 혹시나 이런 부분이 부족하진 않을지 내심 걱정이 된다. 하지만 다자녀를 선택했다 해도 아쉬운 부분은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동생이 없어 아빠, 엄마의 사랑을 혼자 오롯이 받아 너무나 행복하다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슬며시 지난날의 내 모습을 반추해 보았다. 동생이 있는 나도, 외동인 내 아이도 부모에겐 모두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라는 공통점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점 역시 똑 닮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님귀하디 귀한 자녀였.


남동생도 부모님의 귀한 아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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