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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Feb 26. 2024

아내 이마 빛난다고 칭찬하는 줄 알았더니...

남편의 망언 2

2024년 설날.

따로 지내는 제사도 없어 가족 모두 느지막이 일어나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비건 팩 클렌저를 전용 스푼으로  손바닥에 올려준 뒤 얼굴에 발라 1분을 열심히 마사지해 주고 미온수로 어푸어푸 뽀득하게 씻어낸 뒤 히알루론산 스킨을 골고루 바른다. 스킨이 어느 정도 피부에 흡수되었다 싶을 때 튜브형 고수분 크림을 두 번째 손가락에 쭈욱 짜서 이마, 볼, 코, 턱에 골고루 찍어준다. 그리고 양손의 2,3,4번 손가락을 동원해 눈과 입 주변을 제외하고 꼼꼼히 문지른  후, 거울 가까이로 다가가 말간 피부를 보니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친정 엄마가 고기 넣고 푹 끓여주신 육수에 든 쫄깃한 떡국을 먹을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식탁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마침 자리에 앉으려는 신랑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런데 그가 나를 갑자기 그윽하게 바라보는 게 아닌가. '오옹 뭐지? 아침부터 나한테 반했나? 신혼도 아닌데 눈빛은 너무 뜨겁잖아! 웬일이니.' 혼자 별의별 상상을 다하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신랑에게 슬쩍 물었다.


"근데 당신 왜 날 계속 그렇게 쳐다보는 거양?

"어, 이마가 너무 번쩍번쩍 빛나서."

"힛, 그건 내가 너무 미인이라 그런 거지~(눈빛이 심상치 않길래 과감하게 말을 던져 봄)"

"에? 아니 그게 아니고. 당신 오늘 세수 안 했지? 얼굴에 기름이 번들번들한데?!!!"

"뭐? 아 뭐야, 나 아까 세수했어. 로션 바른 게 식탁 조명 받아서 번들거리나 보지!!!"


시방, 저 사람 지금 뭐라카노?

1월의 망언에 이어 2주 만에 두 번째 망언을 들었다. 내가 브런치에 글 쓰는 것도 모르는데 이참에 망언 제조기로 유명세를 떨치고 싶은가 공격이 구나. 그것도 아주 얄미운 주제로 말이지.




어릴 때부터 이마가 좀 넓긴 했다. 엄마는 내가 꼬꼬마 시절부터 "벨라는 이마가 톡 튀어나오고 넓어서 마음이 착한 거야"라고 자주 이야기해 주셨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전에 얼굴에 울긋불긋, 모양이 꼭 순두부처럼 생겨서는 가렵다가 따갑다가를 반복하는 피부염이 생겨 동네 피부과를 가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토피성 피부염이라 증세가 나왔다 들어갔다 수시로 반복하기 때문에 뾰족한 방법없다며 약도 지어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두기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 바르는 연고라도 처방받을까 싶은 마음에 며칠 후 방송에 출연하는 유명 피부과에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딱 보시더니 대뜸 오늘 잠은 몇 시간 잤냐고 물으셔서 6시간 정도라고 대답하그럴 줄 알았다며 잠을 8시간 이상 푹 자라고 하셨다. 곧이어 파스같이 생긴 약을 내 앞에 쓰윽 내미시며 앞으로 푹 자고 1주일만 이걸 바르면 염증은 싹 사라질 테니 걱정 말라고 믿음을 주셨다.


'할렐루야, 결국 원인을 찾아냈네, 냈어. 역시 유명한 의사는 뭔가 다르구나. 일단 확신에 찬 저 말투에 믿음이 갔다. 그동안 잠이 부족한 거였구나. 요새 많이 피곤하다 싶었는데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었나 보네. 열심히 약도 바르고 푹 자서 다시 깨끗한 내 피부로 돌아가자.'


기분 좋은 마음으로 룰루랄라 집에 돌아가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1주일만 발라봐' 약속을 정말 열심히 지켰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8시간을 자고 9시간을 자도 염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심해져갔다. 유명한 의사 병은 못 고치는 걸까. 이를 어쩌지.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만 갔고 고민이 생기면 유튜브를 먼저 뒤져보는 평소 습관대로 피부염에 대한 이런저런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내 피부염에 한 영상은 아니었지만 굳이 병원을 오지 않아도  피부가 좋아질 수 있는 방법들을 세세히 알려주시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참 순수해 보였다. 묘한 끌림과 설득력에 병원의 위치를 조회해 보니 세상에, 우리 집 근처가 아닌가. 희망의 작은 실밥이라도 집아 볼 심산에 전화로 예약을 급히 잡은 다음날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시더니 수부지(수분이 부족한 지성피부)인 데다 지루성 피부염이 잘 올라올 수 있어서 기초화장품을 너무 많이 쓰는 건 오히려 피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는 거다. 아주 최소한으로만 바르라내가 쓰고 있 기초 화장품들을 PC에서 모두 검색을 해보셨다. 알레르기가 올라오게 하는 성분들에 빨갛게 표시가 된 게 보이냐며 이런 성분들이 주사 피부염을 더 악화시킨 요인이라고 짚어 주셨다. 그때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무 감사해서 맛있는 커피라도 사드리고 싶었고 유튜브에서 던 그 선함과 스마트함이 실제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정말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처방이었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본인의 일에 충실하셨을 뿐인데 몇 달간 피부로 맘고생을 좀 했던 나에겐 이런 구세주가 없었다. 할렐루야는 이 선생님을 뵙고 했어야 했다. 할. . 루. 야.!!!


피부가 많이 뒤집어진 상태라 5회 정도의 피부염 치료를 받기로 했고 연고도 같이 처방받았다. 1주일에 한 번씩 열심히 치료를 받았고 밤마다 연고도 열심히 발랐다. 그렇게 5주가 지난 뒤 내 얼굴은 광이 고 원래 피부보다도 더 매끈해져 세수만 하고 나와널찍한 이마가 더더 반짝거렸다.

 

이런 나에게 세수를 안 해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거 아니냐. 얼마나 고생하며 돌려놓은 피부인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었는데 저런 말을 뱉는 건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사람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람은 자기가 상처 준 건 기억을 잘 못하고 내가 받은 아픔만 가슴에 깊이 박히나 보다. 나 또한 가끔씩 신랑을 놀리곤 했다. 불룩 튀어나온 배를 꼬집으면서 똥돼지 같다고, 살 좀 빼라고 타박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T인 사람을 세상 최악의 냉혈 인간이라며 뾰족한 말로 공격한 적도 있었다. 그런 말들에 신랑은 기분 나쁜 내색도, 보복의 말도 없었다.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을 보거나 식사 중에는 미동 없이 계속 밥을 먹었다. 그때 신랑의 기분은 어땠을까? 워낙 자기 속 이야기를 안 하는 성격이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월의 눈치로 미루어 보건대 속으로 그냥 삭이고 넘어갔던 것 같다. 곰돌이 푸를 닮은 우직한 신랑은 항상 그렇게 나의 비수에 그대로 맞아주었다. 연애 시절에도 나의 어떤 신경질과 짜증 다 맞춰주었던 한결같고 순둥순둥한 사람이었다. 그런 면이 좋아 결혼해 놓고 개기름이란 단어에 꽂혀 또 한 번 욱하고 말았네.


부부가 어찌 매일 꽃향기 솔솔 나는 고운 말만 하면 살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부부는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며 칼로 물 베기를 하는 사이인데 말이다. 남편이 공격을 두 번 했으니 다음엔 내가 두 번 공격을 하는 게 아니고 더 나은 내가 같이 살아온 정을 봐서 그냥 참기로 했다. 엄마가 그러시지 않았나? 나는 이마가 넓어서 마음이 착한 거라고.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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