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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un 26. 2024

4800원어치 반성문

요즘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서 씻고 바로 집을 나오는 것이다. 아침 9시에 향하는 나의 도착지는 투썸플레이스다. 먹자골목 안에 있는 커피숍이라 인적이 드물어 스벅 덕후임에도 매일 이곳으로 와 출근 도장을 찍는다.오늘도 어김없이 뒤늦게 꽂힌 버블밀크티 한잔을 들고 2층 테이블 석으로 향한다.

넓고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이곳의 첫 번째 손님은 늘 나다. 늘 앉는 왼쪽 구석자리에 짐을 풀고 앉는다. 노트북을 꺼내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마우스, 외장하드 등을 세팅하고 지난밤 나의 글 조회수와 인친들의 글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손님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어제는 재수생(오전 9시에 대입준비를 하는 학생이라 혼자 재수생일 거라고 단정했다. 어차피 그분은 내가 자기 얘기하는 줄 모를 테니 재수생인 걸로 하자.) 수학 과외 면접이 있었다. 모의고사 결과지를 보며 강사가 그동안의 학습방법, 문제점 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한다. 학생의 어머님은 설교 듣는 맹신도처럼 과외선생님만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느라 바쁘다. 정작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재수생은 모의고사 시험지만 쳐다보며 의미 없이 만지작 거리고 있다. 이 면접은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이 엄마가 선생님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차를 대접할 때부터 느꼈지만 역시나다. 수업은 내일 9시부터 하기로 하고, 교재를 안내해준후 셋은 쿨하게 헤어졌다.

나는 끝까지 눈 마주침 없이 뒤돌아 가는 재수생을 보며 부디 너와 합이 잘 맞는 교사이길 마음속으로 바랐다.


오늘은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아줌마 셋이 등장을 했다. 주변에 아파트가 없는데 느닷없는 아줌마 부대에 꽤나 시끄럽겠다 예상을 하며 너무 정신없으면 1층으로 도망갈 계획까지 했다. 그런데 웬일. 내 타자 치는 소리와 데시벨이 비슷하다. 셋이서 머리를 테이블 쪽으로 한데 모아 뭐라고 속닥이며 대화하는데 소리가 작으니 더 관심이 간다.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예상밖의 장면에 염탐을 하게 된다. 으응? 뭔가 이상하다. 말에 억양이 있다. 사투리인가? 하고 더 집중을 하고 소머즈가 되어 초 집중을 해본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어임은 알 수 있다. 중국어 특유의 성조와 '워''쓰'의 발음이 중국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이들은 회화공부를 하러 조용한 곳을 찾아 집에서 떨어진 이곳까지 온 것이다. 대단한 엄마들. 단지 수다 떨러 온 아줌마라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열심히 사는 그들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글 쓸 소재가 없다는 핑계로, 한동안 브런치를 쓰지 않아서 감을 잃었다는 변명으로 오늘도 은근슬쩍 브런치를 쓰지 않으려던 나 자신을 다그치게 된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이른 아침부터 시간을 쪼개가며 사는데 여기서 비싼 음료만 마시고 갈 거냐고.

'맘충이가 별거냐. 이렇게 돈낭비 시간낭비하는 어미가 맘충이지 '

하며 반성문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집안일을 남 일인 양 모른 체 하고 씻자마자 나왔다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어가야 하거늘 난 오늘도 맛있게 음료를 먹으며 인스타 짤만 보다가 갈뻔했다.


정신 차리자



하루 중 가장 귀하고 좋은 아침 시간 아니던가.

4800원 음료값은 해야지.

그래야 가족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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