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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an 23. 2024

야, 빌게이츠!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방학 8일 차

내가 또 내 무덤을 팠다. 난 정말 순수하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그럼에도 내 자신에게 강력한 걸로 제대로 응징해주고 싶다.


엄마표는 하면 할수록 욕심이 난다.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것도 가르쳐 주고 싶고... TV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유료로 VOD도 보고 싶고, 넷플릭스 같은 OTT도 가입하고 싶은 그런 마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번 방학엔 새롭게 코딩에 도전했다. 이전에 국가지원프로그램으로 홈페이지 제작 과정을 6개월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코딩을 조금 배워놓은 터라 앞으로 교과 과정으로 배우게 될 엔트리와 스크래치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Ebs 소프트웨어 "이솦" 홈페이지

처음엔 EBS 소프트웨어 사이트를 이용했다. 아이들을 위한 곳이니 만큼 다양한 캐릭터와 게임, 만화, 동영상 등으로 쉽고 재미있게 되어 있어서 코딩 수업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2달여 만에 엔트리와 스크래치 기본 과정을 모두 수료를 하며 매우 뿌듯했던 추억이 생겼다.

코딩에 대한 재밌는 경험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특히나 2호는 만들고, 고치는 활동 등 과학좋아해서인지 1호보다 코딩을 더 빨리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의지가 불타오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이들이 닌텐도로 게임을 하던 마인크래프트가 여러 버전 중 코딩을 위한 교육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하다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치는 심정으로 "이거다!" 하며 'minecraft education'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난 그 정보를 몰랐어야 했다. 알아도 이미 그 게임을 다른 버전으로 하고 있고, 원서로도 주야장천 읽었으니 하지 말아야겠다며 쿨하게 접었어야 했다.




 마인크래프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입하는 것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마인크래프트는 microsoft에서 만든 게임이다. 즉, 미국에서 만든 것이기에 영어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영알못인 나는 또 번역기를 돌리며, 힘들게 가입을 하고 게임을 다운로드하였다. (이래저래 영어에 막히는 일이 생기다 보니, 이제라도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free'라는 글자에 빌게이츠의 넓디넓은 마음을 리스펙하며 아이들에게 바로 선보였다. 역시나 아이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게임을 하라는 엄마의 말에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뻐하며 접속을 해서 게임을 시작했다.

'코딩을 하며 게임을 하다니!! IT가 진짜 많이 발달했구나. 이러니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넣었겠지.'

속으로 감탄을 하며

이제부턴 너희가 알아서 하거라. 엄마는 여기까지다.

 하며 멋진 아우라를 내뿜으며 퇴장을 했다. 그 아우라가 3회만 유효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알고 보니 내가 하고 있었던 건 체험판이었던 것이다. 교육용으로 하려면 학교 방과 후 수업과 같이 교육기관에서 라이선스를 구입해 학생들에게 직접 배포를 해야 정식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1호는 자기가 해놓은 게 저장되지 않고 날아갔다고 울기 시작했고, 2호는 교육용이 아닌 진짜 게임 버전을 시켜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둘 다 그만! 기다려봐. 엄마가 이거 구매해서 하게 해 줄게. 1년 이용권 5달러밖에 안 하니까 둘 다 각각 사줄 수 있어."



 또다시 고난의 시간이 찾아왔다. 유튜브, 블로그, 홈페이지 번역 등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정식으로 가입해서 라이선스를 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헤매며 고생을 한 결과, 교육용 게임을 하는 것이라 학교 인증을 받아  microsoft의 새로운 주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려면 학교에 전화를 해서 담임 선생님께 상황을 얘기하고, 컴퓨터 담당(?) 선생님의 연락처를 받아 다시 한번 상황 설명 후 가입에 필요한 코드를 받아야 한다. 그래, 거기까지는 안 그래도 바쁘신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것에 대한 죄송함을 충분히 표현하고, 양해를 구하면 되니 얼굴에 철판 깔고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부탁하는 건 성격상 딱 질색인데, 엄마가 되니 자식을 위해서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하기 싫어도 하게 된다. 학교에 전화걸어 등록 코드를 발급받았다. microsoft의 학생 등록을 하고, 다시 마인크래프트 홈페이지를 들어가 라이선스를 신청했다.

창을 대체 몇 개를 띄웠는지...다시 하라면 못할 듯 싶다.

그럼 그렇지. 또 '결제 불가'라고 창이 뜬다. 이 쯤되니 쉽게 바로 결제되는 게 의심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다. 한숨이 나오지만, 아이들이 이미 맛보기를 했기에 멈출 수 없었다. 왜 불가일까? 또 번역기를 돌리고,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고, Facebook으로 디렉트 메시지까지 보냈다. 영알못 엄마가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일을 '챗GPT'와 '네이버 파파고'가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다. 번역기와 AI를 개발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분들에게 백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고 답변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DM을 통해 담당자가 하루 만에 연락이 왔고, 이번에는 학생이라 유료로 결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증 교사가 라이선스를 따서 학생에게 할당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걸 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젠 뭐, 놀랍지도 않다. 이젠 이 고비만 넘기면 이 프로그램에 대해 반 전문가가 될 것 같은 승부욕까지 든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

인증교사라...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학부모가 교육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또 알아보아야겠다. 제발... 이젠 좀 인정해 줘라. PLEASE!!



 

 DM으로 연락을 주었던 담당자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나는 어디 사는 누구며, 이 프로그램을 왜 하고 싶은지, 아이들이 집공부로 학습을 하고 있어 내가 교육자로 인정을 받고 싶다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CM(마이크로소프트 인증 교사) 승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minecraft education' 프로그램에 대한 극찬도 빼먹지 않았다.

Hooray! (이번 고생으로 영어가 늘었다.) 허가가 되었는지 결제 창이 열린다. 담당자가 머리 아프게 하던 긴 글의 답장 없이 새로고침을 하자마자 결제창이 열리게 해 주어 더 감동스러웠다. 아마도 담당자가 내가 힘들게 번역기를 돌려서 메시지를 쓰고 있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센스 있는 그들이 너무 좋다. 예상컨데, 그들은 누군가의 좋은 아빠일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을 이렇게 찰떡같이 알아듣고 허락해 준 것이리라. (Angel&Michael thanks. 두 분 다 분명 복 받을 거예요.)

드. 디. 어. 결제가 되었다. 라이선스를 구입했다.

내가 해냈다!!!

만 하루동안 정말 짜증도 나고, 답답하고, 포기하고 싶었는데, 이게 뭐라고 결국 해냈다며 뿌듯하고 보람찼다. 약간의 과장을 하자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봤지? 엄마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당당해지는 기분이었다. 현실은 엄마가 하루종일 인상 찌푸리며 번역기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 한 걸 알기에 100% 내 실력이라고 차마 양심상 말할 수 없다.

이걸 하려고 그 고생을 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코딩수업과 게임을 하는 주말이 아니지만, 흔쾌히 코딩 게임을 1시간 할 수 있게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평일에 이틀이나 게임하는 호사를 누렸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지치다 탈출한 영혼을 찾아오기 위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아, 다음부터는 절대!! 일 벌이지 말아야지.
그동안 하던 거나 꾸준히 잘하자.

P.S.

(이번엔 네가 한국어로 번역해라.  나 힘들다.)

빌 게이츠에게.

microsoft를 애용하는 사용자로서 그대에게 더 성장할 수 있는 제안을 합니다.

회원 가입과 결제는 간단하게!!

승인은 빠르게!!!

해줘라, 제발.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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