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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an 20. 2024

이럴 줄 알았으면 작가 하지 말라고 할 걸 그랬어.

방학 7일차

"엄마 미워!!내 마음도 몰라주고..."

중얼중얼, 훌쩍훌쩍하는 소리에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가 보니, 1호가 침대 매트리스를 밀어서 침대와 벽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끼여있듯이 누워 고 있다. (속상할 때마다 하는 알 수 없는 습관이다.) 아이고 아들아.....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바로 옆 매트리스에 누워 등을 토닥여 준다.

"엄마, 나가서 기다릴까?"

"아니, 옆에 있어."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역시나다. 1호의 성향은 세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엄마껌딱지. 수다쟁이. 감정과잉. 아, 맞다. 최근에 하나 더 추가되고 있는 중이다. 사춘기.

이 아이를 대표하는 세 단어로 인해 생긴 이 상황에 당혹스럽고 살짝쿵 어이도 없다. 왜 그런기분이 드는지 오늘도 하소연을 하며 일기를 써 본다.



 

 자, 이제 1시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레드썬!

 1호와 2호의 수학공부 시간을 리는 알람이 울린다. (학교 아님 주의) 아이들이 하고 있던 것을 정리하고는 수학교재를 가지고 거실 책상에 앉았다. 설거지를 하던 나는, 마무리를 하고 나서야 뒤늦게 합류를 한다.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 옆에서 노트북을 꺼내 브런치에 접속을 했다. 저장글에 적어둔 글을 마무리하기 위함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귀신에 홀린 듯 방학일기를 주 3회, 우울과 행복에 관한 매거진을 주 1회, 그러니까 발행만 주 4회를 계획해서 선포해 버린 무모한 도전 중이라 요즘 매일이 마감날이다. 내가 왜 내 발등에 불을 떨어트렸는지 글 쓰다 지쳐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지내야 하는 방학에 나의 비상구로 이용하고 싶어서 그랬던 듯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은 나만의 시간이니, 그 시간만큼은 가족들에게 핑계를 대며 그들로부터 해방될 거라는 행복한 상상을 현실로 옮기려 한 것이다. 나의 브런치 지도교사인 이은경 선생님이 얼마 전 오프모임 때 강의에서 말씀하셨다.

"1년 동안은 밖에도 나가지 말고, 설거지와 빨래도 모른 체해도 되니 읽고 쓰는데 집중하세요. 1년만 그러면 나름의 루틴도 생기고, 실력도 늘어 지금 만큼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게 될 거예요. 아이들도 금세 제자리로 금방 돌아와요. 걱정 마시고, 저 믿고 딱! 1년만 실천하시는 거예요, 아셨죠?"
 

그래야 내 팔자가 피고, 삶의 질이 바뀌기 시작할 거라며 작가의 길에서 있는 작가 삐약이들에게 이제 서서 발걸음 떼라며 걷는 연습을 반강제으로 실천하라 명하셨다. 누군가의 명령받는거 딱 싫어하는 성격임에도 꽤나 설득력있(다고 생각이 드)는 핑곗거리이니 출간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실행해 봐야겠다고 생각이 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 시작이 이번 방학이 된 것이다.

글쓰기는 의도치 않은 장점도 따라왔다. 나의 우울과 스트레스가 글을 쓰고, 댓글과 동기작가 채팅방에서 소통을 하는 동안 해소가 되는 게 아닌가.(엉겁결에 브런치작가 프로젝트를 신청했던 과거의 나를 칭찬해.) 이젠 브런치를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내 삶의 질을 위해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글쓰기는 계속해야 한다.




 부지런히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며 얻은 아이디어를 내 글에게 넣는 퇴고의 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 나 다했어."

"오답까지 다 정리했어?"

"응, 여기 엄마 옆에 아까 전부터 놓아두었는데...."

"아, 진짜? 몰랐어. 미안. 수고했어. 이제 좀 쉴까? 아니면....

 엄마 지금 글을 쓰던 게 있는데, 이거 마무리할 동안 네가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있을래?"

아이게에 자유시간을 주고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사이 1호는 은근슬쩍 의자를 옆으로 가지고 와서는 앉는다.

"너도 노트북 쓰려고? 그래. 우리 나란히 앉아서 하자."

"나는....... 알았어. 난 스도쿠 하고 있을게."

아이는 스도쿠를 하면서 계속 나에게 힌트를 달라며 말을 걸어왔다. 한창 필 받아서 쓰고 있는데, 자꾸 말을 거니 귀찮아진다. 2호라면 엄마가 자유시간 준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나서 방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놀이하면서 놀텐데, 1호는 항상 '함께'를 원한다. 연년생 형제다 보니 첫째가 엄마의 사랑을 오롯이 받는 시간이 짧아서 그런 가 싶어 최대한 함께 하려 노력했다. 그 노력이 1호에겐 조금 더! 자주! 를 외치게 했고, 아이가 크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은 틀렸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예비 중1인데 아직도 둘이면 좋고, 셋이면 행복하고, 네 명이 모두 모이면 세상 다 가진듯한 기쁨이 표정을 넘어 온몸 전체에서 느껴진다.

웃느라 다리 풀린 1호. 어떤 포인트에 웃는건지 아무도 모름;;

그 아이가 지금 내 옆에서 (체감상) 1분 간격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도움이 아니라 놀아달라는 신호인걸 뻔히 알지만, 글쓰기가 더 하고 싶은 욕심에 혼자 좀 해보라며 말이 조금 날카롭게 나갔다. 그러자 아이는 노트북 전원을 껐다. 그리고는 터덜터덜 나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가더니 구석으로 까지 들어간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또 다시, 레드썬!!

엄마가 다가오자 서운함이 더 배가 되어 1호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눈은 이미 하도 비벼서 빨갛게 부풀었다.

"엄마가 화낸 거 아닌데.. 무서웠어?"

"응."

"미안해. 화내려고 한 건 아니었어."

"엄마가 나한테 그만 말하라고 했잖아. 엄마는 맨날 글 쓰느라 나랑 안 놀아주고. 나보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서 내가 엄마랑 얘기하는 제일 재밌다고까지 얘기했는데, 내 얘기는 안 들었잖아."

수다쟁이 아니랄까 봐 울면서도 제 할 말은 다한다.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그동안 내가 아이의 마음을 미리 눈치채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 가슴 깊숙한 곳이 저릿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푸념을 들어주었다. 1호는 내가 했던 행동, 말투를 수십 분째 훌쩍임과 함께 열거하면서 서운했던 감정을 토해냈다. 그러더니 마지막 한마디로 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가 하지 말라고 할걸.

오 마이 갓. 요즘 나의 낙인데, 네가 싫어하면 엄마는 할 수가 없는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의 우울증을 모르는, 아직은 엄마품이 제일 좋다며 안기는 여린 아이가 사춘기와 더 친해지기 전에 더 많이 함께 해주어야 하는데, 또 혼자 두었고 결국은 울렸다. 지금처럼 마음을 표현할 때 기쁨, 슬픔, 속상함, 행복 모든 감정을 다 받아주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15년 동안 가장 빛나던 때에 올인해서 만든 경력과 승진의 인맥줄을 과감히 정리하고, 경단녀를 자처했다. 어느새 15년의 전업맘의 삶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럼 같은 시간을 할애했으니, 지금 나에게 희망이고, 빛이며, 돌파구인 글쓰기는 가족들에게 이해받아도 되지 않을까? 정말이지 '엄마표'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약을 먹으며 치료까지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엄마와 나. 두 역할을 모두 잘 해내는 것은 내 능력치 밖인 걸까? 3년 넘게 끊고 있는 술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아직 이거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아이가 놀러 나가거나 잠들었을 때의 시간을 활용해 짬짬이 글을 쓰고 있다. 계획대로 다 이뤄지지 않는 게 인생이다. 변수는 항상 일어난다. 아이가 감기가 걸려 나가질 못하고, 나도 컨디션 저하로 약을 여러 개 먹다 보니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든다. 이제 글쓰기는 제자리 걸음 하듯 진도가 매우 더뎌졌다. 2주만 버티면 개학이니 그때까지만 도둑처럼 새벽에 좀 더 일찍 일어나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잠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내 도피처였던 수면과 거리를 둘 때가 되었다.

난 글을 써야겠다.

난 글을 쓰고 싶다.

지금도 방에서 눈뜨기도 전에 춥다며 이불 내놓으라고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안 들린다, 나는 지금 타자 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안 들린다아아아'를 주문 외우듯이 중얼거리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비밀이다. 쉿! 문 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 창은 사라질 테니까. ㅎㅎ

잠깐!!! 그러고 보니 본인도 카페에 올리는 글쓰기 인증 댓글에 재미 들려서 주 2회를 하니, 주 3회를 하니 하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던데.. 이러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


아들아, 이럴 거면 작가 대 작가로 배틀을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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