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일주일 동안 서로 돌아가며 감기를 독하게 앓고 지나가는 바람에 탁구대회도 밀리고 미루다 다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탁구부터 하기로 했다. 게임 30분이 뭐라고 이렇게 목숨을 거는지, 이럴 때는 정말 아직 애구나 싶다. 아침을 먹자마자 서로의 컨디션을 묻고, 탁구 랠리를 하기로 결정을 하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칠판에 어설프게나마 '탁구대회'라고 글씨도 써놓고는 탁구 테이블 뒤쪽에 보기 좋게 배치해 두었다.
게임은 5분간의 몸풀기가 끝나고 오전 10시 정각에 시작하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 30분. 시간 내에 랠리 왕복 20번을 하면 닌텐도 게임을 30분간 할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
더 이상의 조건이나 협상은 없다. 심판이 아빠이기 때문에 단칼에 게임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아이들은 팔로 크게 원을 그리며 몸을 풀고는 연습 삼아 공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아아악~! 이게 진짜 게임이었어야 했는데!!!"
"지금 몇 시야?"
"아직 2분 남았어."
"아아아아아악!! 야 다시 해 보자. 심호흡하고... 후우~"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아악"
"야야야, 긴장 풀어. 숨 크게 쉬고!"
엉겁결에 했던 첫 판에서 랠리를 20번 한 이후로 흥분을 해서인지 아니면 다가오는 경기시간에 긴장감이 들어서인지 자꾸 세게 치게 되어 공이 탁구대를 넘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10번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렇게 당황한 사이에 경기시간이 시작되었다.
"자! 10시야. 이제부터는 카운트 센다."
역시나 매정한 아빠 심판은 아이들이 떨려하거나 말거나 본인 역할에 충실했다. 아빠의 경기시작을 듣고 아이들은 제자리 뛰기를 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시작한다.
"자, 진짜 시작이다. 2호 집중해."
"알았어. 형, 살살 넘겨줘."
"OK."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
"아빠, 카운트 그렇게 큰 소리로 세지 마요."
"맞아요. 자꾸 신경 쓰이잖아요."
"핑계대기는. 알겠어. 20개 넘으면 얘기할게."
한껏 예민해진 선수들은 조금의 움직임과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모든 실패의 탓을 돌리기 시작했다. 라켓을 바꾸네, 자리를 바꾸네, 옆에 칠판이 세워져 있으니 신경 쓰이네 하며 여러 핑계를 댔지만, 역시나 심판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카운트만 세고, 남은 시간만 알려줄 뿐이었다.
"야야, 지금 그렇게 떠들 시간 없어. 빨리 해!"
"자, 다시.. 내가 서브 넣는다."
"천천히. 하나. 둘.."
"몇 개예요? "
"19개"
"아아아악!!!!"
처음 서브까지 세면 20개라 봐줄 만도 한데, 엄격한 심판은 서브는 랠리가 아니라면서 유연한 엄마 주최자의 말을 싹 잘라버렸다. 아들 선수들도 평소 같았으면 우겼을 법도 한데, 심판의 성향을 알기에 시간을 버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5분 밖에 안 지났어. 괜찮아."
"지금처럼만 하면 돼. 세게 치지 말고."
"2호, 너 자꾸 코너로 던지지 마"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아휴. 알았어. 시간 없으니까 그냥 해."
"형이 서브 넣어. 나 자신 없어."
"알았어. 한다."
"탁 탁!!"
대화가 1분을 넘기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핑퐁은 계속된다. 하면 할수록 카운트의 수는 줄어들지만, 간혹 10개가 넘으면 15개까지는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18, 19에서 공이 테이블을 넘어가 보는 이들도 안타까움의 탄성을 나오게 만들었다.
"아~ 아쉽다. 몇 개예요?"
"19개"
"또요?"
"아~ 20개 아니에요? 20개인 거 같은데?"
"..."
"야, 다시 해. 지금 페이스 유지 하고!"
"자, 한다. 탁!"
"하나. 둘. 셋. 넷...."
1호는 2호의 특성을 파악하고 테이블의 왼쪽에 서서 코너로 오는 공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내기 시작했고, 2호는 특유의 리듬을 타며 무릎과 팔을 접었다 피며 나름의 페이스로 공을 맞춰 네트를 넘겼다.
"어? 어?"
"야아~~!! 됐지? 됐죠?"
"아빠, 몇 개예요?"
"24개!"
"야호~~~!!"
그렇게 게임은 10분 만에 끝이 났다. 게임하는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초 집중하던 녀석들은 그제야 참고 있던 말들을 속사포로 꺼내기 시작한다. 역시나 자화자찬의 내용이다.
"역시 우리는 운동 신경이 있다니까~"
"나 우리 반 체육 부장이거든~"
"난 야구 선출!"
"야, 무슨 게임할까?"
"우린 운동을 잘하니까 오랜만에 스포츠?"
"좋아, 30분 시간 맞춰!"
너무나 쉽고 빠르게 게임이 끝나서 아쉬움이 남는 주최자는 혹시나 하고 신서유기 나PD의 전략을 가져와 슬쩍 미끼를 던져 본다. 강호동과 이수근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알면서도 속아주며 협상을 하듯, 아이들이 승부사의 끼가 잠재되어 있는지 확인도 해 볼 겸 말이다.
"잠깐!! 남은 20분 동안 랠리 30번 해서 게임시간 30분 추가 어때, 콜?"
"만약에 못하면요?"
"그럼 원래 있던 30분 날리는 거지~"
"에이~ 이럴 줄 알았어. 안 해요!"
"엄마는 우리가 속을 줄 알았나 봐. 당연히 안 하지. 어떻게 얻은 게임시간인데."
"20번도 얼마나 힘들게 한 건데. 그렇지? 그런데 30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다음 주에 30번 도전하기로 하고, 지금은 게임하자. 어때?"
"오~ 형아 천잰데? 콜!!"
아직 어린 2호는 약간 넘어오고 있었는데, 이제 제법 큰 1호가 엄마의 술수를 눈치채고는 쿨하게 게임기의 전원을 누르고 게임을 시작하려 준비를 한다.
아~ 내가 그리던 장면은 이게 아닌데... 주최자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 이번 게임에 미련이 남는다.
다음에는 좀 더 흥미진진하고, 크게 한 건 할 수 있는 걸로 준비해야겠다. 오늘 밤에는 아이들 재우고 나서 신서유기를 다시 정주행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