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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Feb 15. 2024

아들맘의 비애

방학 16일 차

"아, 맞다! 나 숙제 있었는데?"

"뭐라고?"

"선생님이 방학숙제 내줬었는데 뭐였더라?"


2호가 개학을 하루 앞두고 가방정리를 하던 중에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꺼낸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알림장에도, 학교 알림 어플에도 없던 내용이 아이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는 덩달아 가방에서 잔뜩 쏟아져 나오는 통신문은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지난 코딩 프로그램 신청했다가 날짜를 놓쳐 수업을 못 들었던 신청확인 안내장부터, 언제 보았는지도 모르는 시험지들. 그리고 학교 어플로 보았던 가정통신문들이 내 시야에 가득 놓이기 시작한다.


"왜 이걸 지금 주는 거야? 이거 엄마 줬으면 너 코딩 수업 들을 수 있잖아."

"아, 그러네. 깜빡했다. 헤헷"

"지금 웃음이 나와? 알림장 꺼내 주면서 같이 줘야 하는 거 몰랐어?"

"알지. 그런데 깜빡한 거라니까~"

적반하장이 유분수라더니 오히려 실수한 놈이 당당하게 큰소리다. 애미는 잔소리 거리가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우선 급한 숙제부터 함께 찾기로 했다. 지금은 내일 개학 준비를 하는 게 급급하니까.


"학교를 다녀왔으면 가방정리부터 해야지. 숙제가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하던지, 스스로 하던지!

개학 하루 앞둔 저녁에 이게 뭐 하는 건지 원~ 그 숙제가 일기나, 매일 기록하는 관찰 일지 같은 거면 어떻게 할래?"

"그런 거 아니야. 독서 기록이었던가? 계획 실천표 체크하기였나? 아무튼 그런 거야. 간단한 거."

"그게 간단해? 독서 기록이면 대체 몇 권을 써야 하는 건데~"

"제목만 쓰면 돼서 금방 끝나. 어디 있더라. 내가 통신문 사이에 끼워 놓은 것 같은데..."

대화를 할수록 답답함과 화가 동시에 치밀어 오른다. 뭐지? 이 여유로움은? 지금 발등에 불 떨어진 게 나인거였니? 왜 내가 불안하고 너는 천하태평인 건데!! 참으려 노력을 하고, 이해하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대문자 J(계획형) 엄마는 더 큰 대문자 P (즉흥적) 아들의 뇌구조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어떻게 내가 배 아파서 낳은 내 새끼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지? 너무 아빠의 DNA만 가져간 거 아니야?'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유전자를 핑계로 애써 이 상황을 화내지 않고 넘어가려 애써본다.


"띠리링~!"

우리 집에 CCTV라도 달려있는지 2호의 담임선생님께 알림 문자가 떴다.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방학 숙제를 잘 챙겨서 제시간에 등교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오늘따라 야속한 알림장


'선생님, 방학식날 알림장에는 숙제에 관한 언급이 없으셨잖아요. 이제 와서 방학 과제물을 가져오라 하시면, 저 어떻게 하란 말씀이신가요~~'

톡으로 구구절절 내 하소연을 하며 가지고 있는 슬픈 이모티콘을 모두 붙여서 연달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차마 선생님께는 연락드릴 수 없으니, 같은 반 여자친구의 엄마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매사 놓치고 기억 못 하는 아들 엄마에게 같은 반 딸 엄마는 꼭 알고 있어야 하는 필수 인간관계다. 꼼꼼히 기록하고, 기억하고는 마치 내가 교실에 있었던 것 마냥 세세한 것까지 전달해 주는 여자친구들이 일 년 내내 아들과 그의 어미를 위기에서 탈출시켜 주는 생명의 은인이니까. 그래서 매년 이때 즈음이면 새 학년에도 부디 엄마를 알고 있는 여자친구가 같은 반 되기를 아이보다 더 간절히 바라게 된다.




"숙제? 독후감 쓰는 거?"

"아~ 숙제가 독후감이야?"

"응. 방학 동안 책 읽고 그중 2권 골라서 독후감 쓰는 거야.

그거랑 방학 지낸 이야기 발표할 사람은 사진이나, 티켓 이런 자료 준비하는 거랑."

"다행이다. 독후감은 써 놓은 게 있었어. 고마워. 또 이렇게 저를 구원해 주시네요~"

"뭘 이런 거 가지고~ 나도 이제 가방 싸라고 해야겠다."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조만간 커피 쏠게."

"아~ 그러네. 독후감 쓰는 거였네."

"하아.... 얼른 독후감 노트나 그즈으르.(가져와라)"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인상을 쓰고 있는데도 2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종일관 웃음 가득한 표정이다. 언제쯤 저 녀석이 상대방의 감정을 읽으려나.. 저래서 나중에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고, 연애는 어떻게 할는지 오늘도 나는 수명이 1년 줄어들었다. (이러다간 10년도 더 못살고 죽을 듯싶다.)


"잠깐만. 나도 숙제가 있었나?"

"야!!!!!!!!!!!!!!!!!!!!!!!!!!"




 여전히 우리 집은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시끌벅적 중에 어이없는 일들이 펼쳐지지만, 자기 전에 생각해 보면 실웃음이 피식 나오는 그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연년생 초등 형제의 하루는 이렇게 웃음과 슬픔이 공존한 채로 채워져 가는 거리라. 내일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화는 내지 말아야지! 다 내 업보인 것을.

나무아미타불..아멘.



 어디 한 번 까불어 봐라,
그런다고 내가 너흴 미워할 것 같으냐?
장난꾸러기지만 난 너희들이 참 좋더라.



P.S

      그동안 <엄마가 쓰는 방학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은 분명 새해에 좋은 일만 가득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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