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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Feb 06. 2024

오늘도 탁구 -1

방학 14일 차

"자, 1호 선수 드리블하며 치고 나갑니다, 레이업~슛!"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을 때도 얌전히 가본 적이 없다. 두 발이 바닥에 함께 닿아 있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항상 뛰거나 기어 다닌다. (뛰는 건 그렇다 치고, 기어 다니는 건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1호의 소리에 어디선가 나타난 2호는 뒤에서 다리 사이로 공을 왔다 갔다 하는 묘기 드리블 시늉을 내며 형을 자극한다.

"어쭈~ 잘하는데, 대결 go?"

"당연하지, 덤벼!"

빨래통으로 갈 뻔한 수건은 그 상태로 돌돌 말려 농구공으로 변신을 한다. 이럴 거면서 왜 힘들게 용돈을 모아 농구공을 사놨는지 모르겠다.

'그 돈을 모았으면 지금쯤 집이 한 채.. 아니지, 자동차가 한대..? 아니지,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겠구나. 나보다 낫네. 나는 커피값만 모아도 차 한 대 나왔을 것 같은데..'

서너 살 아이와 만만치 않은 쓸데없는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 때 즈음 나의 망상은 "쿵!"소리와 함께 와르르 깨졌다.

"야, 제대로 들어. 또 부딪혔잖아."

"형이 기울어진 거야."

"아아아~ 나 문에 꼈어."

또 어디선가 일 벌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기도 전에 정답이 내 눈앞에 놓였다.

"이건 또 왜 꺼내왔어?"

"엄마가 뛰지 말라며~ 그래서 탁구 하려고."

"맞아. 엄마가 드리블도 안된다고 했잖아. 우리가 뛰는 거랑 공 튀기는 거랑 똑같다고."

"형아, 준비 됐지? 20점 내기 콜?"

"콜!"

 너희는 정말 나중에 뭐가 될래도 될 거다. 이런 잔머리도 어딘가엔 요긴하게 쓰이긴 하겠지 뭐.




요 며칠 비도 오고, 감기도 걸리고 해서 밖을 못 나갔더니 몸이 간질간질했나 보다. 하루라도 뛰어놀지 못하면 몸이 굳기라도 하는지 어떻게든 땀을 흘리려는 이 건강한 남정네들이 귀엽고 기특하.... 려 하는데 또 사사사삭 감성이 깨졌다.

"야, 공을 어디로 주는 거야!!"

"형이 제대로 치면 되지."

"네가 제대로 안 주잖아."

"시합이니까 그렇지. 그럼 형도 그렇게 해~"

탁구 시합은 5분도 안 돼서 입씨름으로 바뀌었다. 없으면 심심해서 생각나고, 있으면 어떻게든 싸울 거리를 만들어 입으로든, 몸으로든 싸우는 게 형제의 운명인 건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형제사이는 더 두터워지고, 그보다 더욱 자주 투닥거린다.

"그만 싸워. 그렇게 서로 공격만 하면 게임이 되겠어?

 지금 보니까 주고받기 한 번이 제대로 안되는데, 이걸로 점수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러지 말고, 핑퐁 20번을 한 번에 성공하면 닌텐도 게임 30분 어때?"

"OK!! 야, 할 수 있지?"

"형, 나 조금만 살살 쳐줘."

아이들 싸움에 소리 지르지 않고, 순간 생각난 아이디어로 위기를 넘겨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게임을 빌미로 했다는 게 조금 양심에 찔리지만, 그 또한 스포츠게임으로 하면 되니 1시간 정도 땀을 쭉 빼면 진정되리라. 나야말로 잔머리 좀 쓸 줄 아는 사람이었어. 기특하다, 나 자신. 이런 좋은 아이디어를 내 준 <신서유기> 팀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아들엄마도 12년을 하면 큰소리 내지 않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20번의 주고받기 미션은 30분의 주어진 시간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승부욕이 타오르는 1호는 스멀스멀 화가 올라와 실수를 하기 시작했고, 형의 눈치를 보며 하고 있던 2호는 자신의 실수가 나올 때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귀까지 빨개졌다. <신서유기> 속 나PD처럼 크고 단호하게 "땡!"을 외치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아들 앞에선 마음 약해지는 엄마밖에 되지 못한다. 20번에서 15번으로, 마지막 1번의 기회까지 찬스를 다 끌어다가 써봤지만, 결국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엄마, 내일 또 해요"

"연습을 좀 더 해야 성공할 것 같은데?"

"그럼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수요일에 다시 해요. 형 어때?"

"좋아."

"엄마도 좋아. 수요일 저녁 7시에 다시 미션 하겠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나의 현명한 대처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지...

그 후로 아이들은 밤낮없이 틈이 날 때마다 탁구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땀이 많은 2호는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묶고는 집에 있는 탁구채를 다 모아 자신에게 맞는 채를 연습하며 고르기 시작했고, 1호는 혼자서 탁구채로 공을 튀기며 탁구에 대한 감을 익혔다. 탁구대에 공이 튀는 모양대로 몸을 구부렸다 폈다 리듬을 타는 연습까지 잊지 않았다. 

그렇게 3일.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준비했다.



2024년 2월 7일 수요일 저녁 7시. 그들의 미션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오늘도 탁구 - 2>는 목요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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