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운명의 수레바퀴는 계속 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가끔은 내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계속해서 주인공을 고난 속에 던져놓는 이야기의 주인공 말이다.
불편한 상사와의 근무가 한 달 더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회사에서 새로운 팀리더를 뽑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도 본사 이사를 통해서 말이다.
사실 내가 이 팀에 들어온 방식은 낙하산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분의 추천으로 알바부터 시작해 팀리더까지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지난 월요일에 퇴사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팀리더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나의 자리가 그분의 영향력 덕분에 유지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분이 떠나자마자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고, 나는 평사원으로 돌아가 일을 해야 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구두상이지만 팀리더로 일하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내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에 올인하면 시야가 좁아져 다른 건 잘 보지 못하는 성격이, 이런 상황에서 단점으로 드러났다.
솔직히, 조금은 오만했던 것 같다. 자리가 곧 생길 거라 믿고 있었고, 내가 이미 실무를 익히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맡게 될 거라 여겼다. 외부 인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회사도, 사람도, 아무도 내 자리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괜한 자존심을 부려 진상처럼 굴었던 지난 며칠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번 일을 통해,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기댄 기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배웠다.
나는 머리가 꽃밭이었다. 확정되지 않은 자리에 품은 멍청한 믿음, '기대'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감정들은 결국 실체 없는 환상에 불과했다. 콩깍지가 벗겨지듯, 현실은 차갑게 다가왔고, 나는 이제야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상사와 본사 관계자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 지금은 팀리더 자리는 물 건너갔지만, 그렇다고 바로 퇴사하는 건 나에게도 회사에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다니면서 이직이나 다른 진짜 내 길을 고 민해보려 한다.
학점은행제를 통해 부족한 학위를 보완하고, 배우고 싶었던 분야도 공부해 볼 생각이다. 영어와 자격증 등도 천천히 준비하면서, 이제는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봤다"는 증거를 쌓고 싶다.
그렇게 다짐한 나는 휴일 동안 헬스장을 등록하고, 전시회에 다니며 머릿속의 뿌연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애썼다. 4개월 만에 인바디 체크를 해보니 4kg이 빠져 있었고, 지방이 줄고 근육이 늘어 몸 상태는 이전보다 좋아졌다. 맘고생 다이어트가 이렇게 효과적인 줄 몰랐다. 이번 주는 참 빠르게 흘러갔다.
월요일, 지인분의 퇴사. 화요일, 본사와의 면담, 그리고 새로운 팀리더 선발 소식. 수요일과 목요일, 휴무. 고민을 반복한 끝에, 현재 매장에 조금 더 다녀보겠다는 결정을 전달했다.
그리고 금요일. 본사 측에서 또다시 방문하셨다.
새로운 브랜드의 팀리더 자리는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흔들림 없이 현재 자리를 지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사님의 말처럼, 지금 내 나이를 고려했을 때 평사원보다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가 더 적합하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이직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래야 했다.
머리는 옮기라고 말하는데,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낯선 이름표와 새로운 공기 속에서 웃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까 봐, 그게 두려웠다. 곧 팀리더가 교체되고 새로운 리더가 오겠지만, 그분 역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나까지 떠난다면 매장 운영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떠나기 위해
정이 밥 먹여주냐는 말이 있듯이, 나 역시 그냥 내팽개치고 떠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에 인생은 혼자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행동한다면 내 행동에 대해서 마음에 큰 짐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긴 밤, 또다시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팀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새로운 리더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조금 더 함께하겠다고, 지금 매장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나고 싶다고 전했다.
어쩌면 조금 호구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나다운 결정이었다.
마음속의 짐을 남겨두기보다는 몸이 힘들더라도 나는 떳떳하게 행동하고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