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이별, 설레는 출발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딱 3개월을 근무한 매장에서의 마지막 주를 보냈다. 단 3개월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는 쳐다보지 않겠다던 서비스직에 알바로 들어왔고, 갑작스럽게 점장 제안을 받았다. 점장 대행으로 인수인계를 받던 중 상사와 갈등이 생겼고, 인수인계는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두 달도 안 돼 체중이 5kg이나 빠졌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평사원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다른 브랜드에서 점장 제안을 받아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브랜드로 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기에, 약 2주간은 새로 온 팀리더님께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인수인계해 드리고, 함께 일했던 직원들에게는 불편한 점이 있었으면 미안하다고 진심을 전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스트레스를 유발했던 상사와는 이번 주에 단 하루만 함께 근무했기에 이번 주는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이미 마음이 떠난 건지, 책임 의식이 부족한 건지, 그분은 매장 일에 거의 손을 떼다시피 했고 결국 고생은 새로 오신 팀리더님 몫이 되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깔끔한 마무리도 아닌 듯하다. 진심으로 더는 이곳을 돌아볼 생각이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쉬는 날의 날씨가 참 좋아서 그런지 기분도 유난히 좋았다. 이번 주에는 ‘워너 브롱크호스트: 온 세상이 캔버스’ 전시에 다녀왔는데, 색감도 예쁘고 작품이 주는 감성도 좋아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주말엔 대기가 길다던데, 평일에 방문한 덕분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요시고 사진전도 흥미는 가지만 아직 전시 초반이라 관람 열기가 뜨거울 것 같아, 조금 지나고 조용해질 때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전시 외에도 오랜만에 경복궁, 광화문, 종로를 산책하듯 걸어 다녔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마주했고, 교보문고에서는 새로 나온 책들을 훑어보며 시간 나면 읽고 싶은 책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요즘엔 '눈물을 마시는 새'에 푹 빠져 판타지 소설에도 관심이 생겼다. 시리즈가 길어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갤러리에 하나하나 저장해 두었다. 이후에는 친한 형님을 만나 맛있는 저녁도 함께하며 휴무 첫날을 야무지게 채웠다.
다른 휴일에는 못 읽었던 소설책도 보고, 운동도 다녀오며 자기 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최근 들어 생긴 취미는 목욕탕에 가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인데, 이게 의외로 꽤 괜찮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몸도 풀리고, 생각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쉬는 날에 못해도 2주에 한 번은 꼭 가게 된다.
이번 주는 주말에도 쉬는 날이 있어, 오랜만에 영어 학원도 다녀왔다. 수업이 끝나고는 거의 반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 저녁으로 곱창을 먹었다. 운동하고 나서 내 입으로 곱창을 먹자 한 적이 없기에, 메뉴자체가 너무 반가우면서도 내 몸에 죄책감을 주는 맛에 미안함이 공존하는 저녁식사 었다. 술도 한잔하고 커피도 한잔하면서 각자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하루가 훌쩍 지나버렸다.
일요일 매장은 정말 바빴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괜찮았다. 내게 스트레스를 줬던 건 그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그 사람만 없으면, 어떤 상황이 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팀리더가 되었어도 잘 해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놓친 기회는 다른 사람 손에 들려 있으니, 이제는 그러려니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새로운 시작이다.
새 브랜드의, 훨씬 바쁜 매장으로 출근한다. 그곳에서 다시 빠르게 매장 업무를 익히고, 메뉴를 공부하며, 또 한 번 팀리더 자리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가는 브랜드 지금 브랜드에 비해 연차도 높고 메뉴도 다양해서 공부할 게 많다. 자료를 여러 번 읽긴 했지만, 보는 것과 몸으로 겪는 건 다르다. 직접 부딪히며 더 배워야 한다.
설렘 반, 두려움 반.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고 싶다. 잘해봐야지. 진짜 잘해봐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오늘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