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와 나 2부
2024년 7월 17일 수요일
기타폴더라는 말로 주치의 선생님께서 쓰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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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행복한 H병원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김정훈 병원장님께
안녕하세요.
한때는 절대 좋아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감정!
그 어둡고 졸렬한 마음의 조각들을 병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봐주셔서 고통으로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구나."
그 시선 덕분에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원장님께서 건넨 말은 처방이 아니라 안부 같았거든요.
아프다고 말했을 때 놀라지 않고 울음을 삼킬 때 같이 침묵해 주셨죠.
그 시간이 쌓여 저는 조금씩 회복이 아닌 존재로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통증보다 그 다정함이 더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그 마음에 기대어 오늘도 하루를 살아냅니다.
2023년 9월, 그때 제 마음 안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신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통증이 쉼 없이 들이치는 그 나날들을 ‘병’이라 부르며 안간힘을 썼습니다.
끝내 숨기지 못한 건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조금 더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보니 무너진 건 근육도, 장기도 아닌, 그 모든 것을 떠받들고 있던 축(마음) 이었어요.
균열은 시작되었는데 바닥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소리 없는 붕괴였기에 아무도 몰랐고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픈지’를 말하고 싶었지만 눈도 마주치지 못했고 입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고통은 분명한데 말이 되지 않았어요.
밤이면 숨이 막히는 듯한 불면, 아침이면 더 깊어지는 피로... 조금씩 저를 잃어갔습니다.
그때 원장님께서 제 눈을 보고 물으셨지요.
“무엇이 아프게 했나요?”
그 말은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어디가 아프냐"가 아니라 "무엇이 아프게 했냐"
통증의 중심을 묻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만든
배경의 풍경을 함께 보자는 듯한 물음이었습니다.
통증은 원인을 묻지 않잖아요?
그저 거기 있고, 그저 아플 뿐이죠.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가 이유를 들어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통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기척은 마음의 얼어붙은 음지에 살며시 문질러 녹이고 있었습니다.
‘증상’이 아닌 ‘삶’ 전체를 진맥 해주신 원장님!
긴 시간, 당신은 제 고통의 연원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몸만이 아니라 그 몸을 지탱해 온 마음과 관계, 상실, 묵은 슬픔들까지도...
당신은 그것을 병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묵은 책장을 먼지를 날리지 않으려는 손길로 넘기듯, 제 삶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셨지요. 저는 처음, 고통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의 표면만을 보지 않으셨고 고통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를, 그 뿌리가 무엇을 지나 여기에 도달했는지를 집요하고도 다정하게 물으셨죠.
그 질문들은 감춰두었던 기억의 숲을 지나 오래된 판단과 늘 같은 쪽을 택하던 익숙한 습관들까지 데려갔습니다.
제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갈라내고 채점해 왔는지, 또 얼마나 끊임없이 판단하고 간택하며 살아왔는지, 뿌리 깊은 곳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원장님과 함께 보낸 치료의 날들이 쌓일수록 알게 되었어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삶 자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의 삶이 어떤 고통을 경험하고 무너졌는지”
“그 마음은 언제부터 외면당했는지”
그 침묵이 저를 안아주는 것 같았어요.
아팠던 건 몸이 아니라 말을 삼키며 살아온 시간들이었고 계속 괜찮다고 자신을 다그쳤던 오랜 태도였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그 마음을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야 할지를 모르기에 아픈 거구나, 그래서 더욱 쉽게 "자신을 버리고 더 오래 아물지 못하는 거구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응원과 지지로 조금씩 말하려 해요.
어디가 아픈지를,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를. 그 말을 꺼내는 것이 곧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숨겨두었던 외로움, 문득문득 무너져 감내해야 했던 감정의 둑...
몸의 증상으로 들어와 마음의 폐허를 샅샅이 살펴 주셨지요. 언어로는 온전히 건넬 수 없는 것을 당신만의 섬세한 감각으로 짚어내어 주셔서 편하게 주저앉을 수 있었어요.
누군가는 제 아픔을 '과민반응'이라 불렀지만 그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 보낸 마지막 구조신호였음을 치료를 통해 자연스레 느끼게 해 주신 원장님!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던 그 바닥을, 아직 잊지 못한 채 기억은 때때로 발목을 잡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기 위해 감정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회복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통증이 삶이 말하려 했던 마지막 언어였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회복은 그 언어를 듣는 것.
더 이상 덮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곳에 빛이 들어오는 걸 허락하는 것.
통증은 외면당한 감정의 무게였고 말하지 못한 시간들이 응고되어 남은 흔적이었습니다.
말을 꺼낼 수 없을 때는 차분히 기다려 주셨고, 눈물을 보이면 그 눈물이 흘러가도 괜찮다고 해주신 덕분에 마음껏 아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병원이라는 곳에 감정을 두고 나온 적이 없었어요.
병원은 늘 숫자와 증상, 치료 계획만 오가는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 앞에서는 달랐습니다.
말 없는 무게도,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숨도, 고통을 꺼내는 흐느낌도 진료의 일부가 되었거든요.
원장님을 만나 감정도 확실하게 치료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정한 시선과 잔잔한 말투, 그리고 “괜찮아요”라는 그 한마디가 저를 안심시켰고 마치 새롭게 복원되는 느낌을 주었어요.
늘 “천천히, 조심히, 괜찮아요.”
이 세 마디가 저를 다시 살게 했습니다.
진료실 안, 감정의 바닥에서 조금씩 떠올랐어요.
제가 원장님께 치료받은 건 통증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처음으로 ‘말’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마음을 살리고 삶을 다시 시작하는 "언어"
“지금 이대로도 온전해요.”
“조급하지 않아도 돼요.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요.”
그 말은 치료의 도구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말은 평생 가슴속에 남아 아직도 삶의 방향을 바꾸는 '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파도 행복합니다.
진짜 회복은 통증이 아니라 나를 존중해 주는 말 한마디, 사람을 살리는 건 약이 아니라 다정하게 건네진 말 한 줄이었습니다.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대해주셔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사람은 조금 더 정직해지는 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용감해지는 '나'를 거기서 발견했으니까요.
감정 치료는 이제 종결점에 다다른 듯했습니다.
그 말을 조심스레 입 밖에 꺼내며 내심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부디, 이 고요가 오래 머물기를요.
내면의 긴 터널을 관통하는 동안 저는 숨어 있던 오래된 등을 마주했습니다.
그 등 뒤에는 발화되지 못한 언어들, 퇴적된 회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지요.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이 시간의 틈새로 실금처럼 가느다란 빛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미묘한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이는 원장님이셨다는 걸 아실까요?
마음의 반석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뼈와 신경 사이에 웅크린 감정의 응어리,
언제부터인가 언표 되지 못한 슬픔이 신체의 언어로 저를 부르고 있었어요.
마음이 이완되었던 소중한 치료의 시간을 통해, 저는 하나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빛은 언제나 대범한 형태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
때로는 투명하고, 때로는 실낱같이 희미하지만 그 빛은 단 한 번도 저를 외면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요.
결국 제가 너무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몸의 회복’이라는 여정이 시작되겠지요.
저는 이제 원장님께서 터준 그 길을 따라 그 길의 본질 안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몸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이 먼저 그 아픔을 품어주어야 겠지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의 거센 풍파 같은 감정들을 끝까지 놓지 않고 함께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아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겠다.”는 말씀이 그날의 고통을, 그날의 어둠을 견디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두려움보다 희망을 더 자주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통의 바다에서 나를 안아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시 걸을 힘을 얻게 되었거든요.
몸이라는 기둥도 다시 자라기 시작했던 그 출발선에 섰던 날을 기억합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쳤지요.
감정의 골목들을 지나고 보니 저는 치료받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을, 나 자신을 다시 느끼게 되었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 덕분에 "다시 걷기"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삶이 한 번 더 허락되었다는 증거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여정의 가장 큰 고마움은 당신께서
저의 아픔을 타박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오직 ‘나의 속도’로 함께 걸어주신 것입니다.
회복은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통증이 말하고자 했던 삶의 균형을 이해하는 것임을 몸소 알려주신 원장님!
당신과의 치료는 '치유'였고 '축제'였습니다.
참 많이 배웠고 앞으로도 배우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길을 지구에서 가장 단단한 동행이 되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From.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 드림.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내 마음의 먼지를 털어주었다.
기억 속 어딘가에 던져둔 감정들, 상처, 외로움, 부끄러움, 말라붙어 굳어 있던 것들이 그 손끝에 닿자 무너졌다.
나도 몰랐던 나만의 시간들이 울음을 삼키듯 흘러나왔고 그분은 겨울 끝에 마주한 연둣빛 잎사귀처럼 나를 조심스레 다루어 눕혀주었다.
쉽게 부서질까, 다시 닫힐까,
숨을 죽이며 단 한 번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버려졌다고 믿었던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아플까 조심해야 할, 하나의 생명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 다정한 따뜻함에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제대로 된 치료는 고통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잊힌 마음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치료는 약이 아니라 관계임을.
사람의 손길, 기다림, 말들이 한없이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임을...
존중과 애정은 말보다 깊었고 약보다 효과적이었다.
이 시절이 지나고 나에게‘치료’라는 말의 뜻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분을 뵐 때마다 느낀 것은 두 전통의 조우가 동양의 선과 서양의 의학이 청량하고 투명하게 교차하며 빛났다.
물과 빛이 만날 때 생기는 무지갯빛 굴절처럼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졌고 그 깊이를 온전히 헤아릴 수 없어도 강하게 이끌렸다.
들려주시던 이야기들, 책의 구절, 그리고 당신만의 통찰들...
그때의 나는 막 잠에서 깬 아이처럼 무엇을 들은 건지 다 알 수 없었지만 빨대처럼 마음을 그 뜻에 대고 흡수하려 했다.
잘 이해되지 않았어도 고통을 지나가는 나에게 꼭 필요한 길잡이 같은 보호막이 숨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더듬고 배우려 애썼지만 그 세계는 당시의 나에겐 너무도 넓고 깊었으며 어려운 바다같았다.
그 깨달음은 감정 치유가 어느 정도 시작된 뒤에야 찾아 왔다.
감정의 반응이 아니라 치유의 길 위에 서서 인지와 감정 사이에 놓인 시차가 조금씩 풀려가는 시간이었다.
무언가 깊고 묵직한 뜻이 있다는 것만 느꼈을 뿐,
그 뜻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는 끝내 따라가지 못했다. 마음속에 감춰진 바다를 헤엄칠 힘이 없었다.
그러나 그 바다는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고
그 부름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도
서서히 다가가리라.
마주하리라.
들여다보리라.
만져보리라.
끌어안으리라.
기억하리라.
이름 붙이리라.
그리고 끝내 사랑하리라.
내면의 상처들이 하나둘 정리되고 혼란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그 말씀들은 마음 안에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찾은 듯 서서히 스며들었다.
원장님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세상에, 이제야 말이 통하네!” 하고 미소 지으셨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해와 수용이 동시에 일어나는 드문 순간이었고 은총이자 큰 기쁨이었다.
오래전부터 나의 고통을 감지하고 좋은 말귀와 통찰을 준비해 건네주셨지만 그게 그때는 어찌나 공허하던지 알아듣지 못해 갸우뚱하고 이해 못 했다며 다시 말씀해 주라는 말을 했던 내 모습도 선하다.
사실, 현실과 동떨어진 말처럼 느껴졌다.
이제 와서 고전의 대목이 아닌 그 의미가 통한다는 건, 따뜻한 진심이 뒤늦게라도 전달되었다는 뜻이겠지?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완성되는 매우 인간적인 순간!
내 안의 두 세계가 만난 것 같아 넘치게 감사했고 황홀했다.
동양의 선사와 이스라엘 예언자의 통찰이 하나로 연결되듯 지성과 감성,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하나로 연결된 기분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신경학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만족감이 차고 넘쳤다.
기뻤다는 감정에는 “아 이제 알겠다”가 아닌, 이제야 내가 나 자신과도, 원장님과도, 세상과도 닿았구나! 하는 복합적인 마음...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간택심만 버리면 된다."
인간 마음의 본래 자리와 선악을 분별하며 흔들리는 욕망의 뿌리... 선악과는 단지 과일이 아닐 것이다.
분별하는 마음, 좋고 나쁨, 옳고 그름, 높고 낮음을 집착하는 이분법적 인식의 상징이 아닐까.
하나님의 성품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은 그 분별을 취하는 순간 '자기'라는 중심을 세우고 고통과 소외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좋아하고 싫어하면 마음은 바로 어그러진다.
이것이 내면의 원초적 평온! ‘무분별’의 자리에 다시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치의 선생님이 때로는 부처님이나 목사님으로 보였다.
진리의 근원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물줄기를 향해 흐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거룩한 공명을 그분을 통해 느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선불교의 선사들이 저마다 하늘의 본성을 말했지만 어디서나 지극한 그 한 자리.
우리 모두 잠시만 멈춰 서서 좋고 싫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스스로 빛날 것이다.
감사는 그 자리를 온전히 목도한 자만이 품을 수 있는 숨결 같은 환희이자 도를 좇는 이의 걸음이리라.
나에게 "신심명"의 첫 구절을 보내신 의도는 마음의 병을 마음으로 어루만져 말하라는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분은 육체만이 아닌, 마음의 미로까지 살피려 애쓰셨다.
고통은 몸의 문제를 떠나 좋다 싫다를 가르는 끊임없는 ‘간택심’에서 비롯된다는 것!
날카롭고 켜켜이 쌓인 분별의 칼날이 어떻게 나를 상처 내왔는지를 그분은 알고 계셨던 듯하다.
"나는 그 말씀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종종
바람에 흩어지는 잎사귀처럼 흘려보냈지만
알고 보니 내 마음에 뿌려진 씨앗이었다."
그 씨앗은 무성한 숲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절, 작고도 위대한 등불이 되어주었다.
감사는 그 빛 아래에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보고,
무너진 자리 위에 다시 서는 힘이 된다.
그런 분께 죽고 싶다느니, 살려달라느니 한없이 무너진 얼굴을 들이민 것이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원장님의 태도에서 환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질 때면 그 마음에 깊이 감동해 꼭 나아서 반드시 행복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나 같은 환자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주시며 함께 달려주시고 지지해 주셨기에 그 다짐은 더 커졌다.
‘지금 여기’에서의 평온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그분의 소망이 지금도 따뜻한 불씨로 살아 숨 쉰다.
나에게 이해보다는 체험을 유도하는 메시지를 주실 때면 감정이 복받혔다.
글귀를 보내 주셔서 선불교에 대해 살펴보니 ‘생각’보다 ‘직관’과 ‘경험’을 더 중시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 구절을 곱씹으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풀리기를 체험하길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깨달음의 문을 건네는 깊은 신뢰, 그리고 당신의 환자 아무개는 그 본래 밝음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 이것은 처방이 아니라 치유와 깨달음 사이의 다리를 놓아주는 선물이었다.
그분만의 향기가 느껴지는 행복한 치료는 앞으로도 쭉 이어진다.
몸이든 마음이든, 흔들릴 때마다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건 고통이 내게 준 가장 근사한 선물이었다.
감사는 고통의 풍경을 함께 건넌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언어인 것 같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주치의 선생님과의 그 특별한 여정은 이제 치료를 넘어선 하나의 서사로 남았다.
대환장파티도, 애프터 파티도, 그 모든 파장은 결국 나를 다시 살게 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쭉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든 함께 걷는 길이기를.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웃으면서.
그렇게 계속 환희와 회복 사이에서 나아가야지.
감사는 쉽게 피어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함께 끝까지 걸은 자만이 입술 위에 올릴 수 있는 환희였다. 고통을 지나온 이들만이 아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찬란함...
그 시절은 신의 숨결처럼 시간의 바깥에서 흘러온 축복이었다.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나는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여정은 단절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시 이어질 실을 쥐고 살아가니까.
다시 아프더라도, 다시 무너져 내리더라도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있는 하나의 자리를 배웠다.
붕괴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끌어안던 그 침묵, 말보다 든든했던 한 사람의 존재.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더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건, 감정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쉰다는 뜻이다.
무너짐조차 나를 증명하는 언어였다.
그렇게 나는 배웠다.
회복은 소란스러운 승리가 아니라 나를 되찾는 행위라는 것을.
치료받는 것은 통증이 아니라 나를 잠시 잃어버렸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픔은 나를 외면하지 못한 마음이 보내온 마지막 언어였다.
회복은 완치가 아니라 나를 다시 신뢰하게 되는 일이고
나는 병을 앓았던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나를 기다려온 것이다.
또한, 고통은 영원하지 않고 내 몸은 끊임없이 회복을 도전하고 있다.
나는 지금,
"지구에서 아직도 행복한 환자다."
아픔이 내 마음을 열었고, 진짜 나를 만났고, 다시 아프지 않길 바라지만,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여정이 누군가에게도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을 나의 평생 주치의 김정훈 원장님께 마음의 계절이 바뀌는 이 문턱에서, 감정의 두 번째 장을 여는 헌사로 바칩니다.
몸이 가진 고유한 언어에 귀 기울여주시며 지구에서 가장 든든한 동행을 해 주셔서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50524 행복한 에이치 병원에서 독서모임 끝나고 원장님! 하고 부르니 바라보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