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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달려야 하니 차라리 비가 왔으면 좋겠어

by 철봉조사러너

요즘 못 달리겠다...


사실 이런 날은 달리는 게 더 문제다. 쉬어주는 게 상책일지 모르는 폭염에 나도 정말 잘 쉬고 있다.


아픈 건 아니다. 물론 때마침 또 엄청 바쁘긴 한데,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냥 글쓰기만 '아예' 쉬고 있다…


중요한 건 꺾여버린 나의 의지이다. 연초부터 러닝 작가가 되어야겠다 싶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요즘의 무더위와 정신없는 나의 일상은 마음가짐을 한 풀 꺾어버렸다. 무더위나 꺾일 것이지 나의 의지가 꺾일 것 까지야... 사실 이처럼 의지나 바쁘다는 건 핑계고 업무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 달리기와 글쓰기는 잠시 내려놓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달리기가 기다려지는 시점이 있다. 바로 비 속을 달리는 '우중런'이다.


러너가 되고 나서부터 나는 여름 비가 좋아졌다.


'우중런(雨中+RUN)'은 여름 달리기에 있어서 하나의 좋은 대안이다. 러너들도 이런 한자어와 영어를 괴상하게 조합한 이름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착' 달라붙는 이름은 러너들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려 결국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여름철 비를 맞고 달리는 행위는 체온의 상승을 억제하고 체력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유지해 준다. 요즘 같이 더울 때 달리다 보면 차라리 제발 비가 좀 왔으면 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혹여나 비를 맞고 뛰는 나 자신이 남들은 좀 이상하게 볼 거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뭐 그게 중요한가. 나 자신은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정말 매력이 넘친다.


물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비가 오는 상황은 높은 습도로 인해 호흡을 방해하여 폐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울러 미끄러운 노면 상황으로 인한 부상을 주의해야 하고, 하천 주변은 범람이 발생해 위험할 수 있다. 정말 비가 많이 올 때 우중런은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달리기를 마치고는 최대한 귀가와 샤워를 통해 체온을 유지해주어야 한다. 비를 맞고 오래 동안 방치하면 감기에 걸릴 수 있다. 이런 은근히 많은(?) 유의사항만 참고한다면 즐거운 빗속의 달리기에 빠질 수 있다.


우중런은 나의 달리기 활동에 있어서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줬다. 어렸을 때부터 번거로운 걸 못 견뎌서 비를 유독 싫어했던 나는 이제는 이 번거로움을 축복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비가 오면 당연히 우산을 써야 하고 실내에 있어야 하지만, 혼자서 비를 일부러 맞으며 달리는 일탈은 조금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요 근래 간간이 내린 비 덕분에 나의 무겁고 '우중충'한 마음도 조금은 빗물에 씻겨갔다. 아, 어쨌든 우중런은 최고다.


비 맞은 몰골에는 찍을 수 있는 게 손목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이러면 안 될 거 같았다. 요즘은 일요일마다 우리 크루와 함께하는 새벽 달리기를 나가고 있다. '혼뛰'를 지향하는 나이지만 역시 달리기 싫은 런태기에는 '함뛰'가 제일이다. 억지로라도 사람들에 끌려다니면 달리게 된다. 비록 아직까지도 변변치 않은 다리이지만 10킬로 넘게 달리고, 산도 달리고 매 주말마다 달린다.


그러면서 계속 기대하고 생각하게 된다.

정말 요즘 달리기는 차라리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내 무겁고 우중충한 마음도 조금은 상쾌하게 '우중'되었으면 한다.

더워도 계속 새벽에는 달릴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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