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공연”
아내의 질문에 답했다. 일주일의 휴가가 힘들어서 그냥 편히 앉아서 본 공연들이 재미있었노라고 가볍게 답했다. 그런데 계속 여운이 남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 질문. 제주에서의 시간 중에 무엇이 가장 좋았던가? 그건 바로...
우주다.
몰랐는데 제주도가 '우주'에 진심이더라. 제주 하면 생각나는 게 너무나도 많지만, 특히 우주가 있었을지 일전에는 미처 몰랐다.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을 생각해서 방문했던 '우주항공박물관'과 '제주별빛누리공원'이 가장 나의 기억에 남는다. 확실한 건 둘 다 아주 알차고 교육적인 내용이 가득한 좋은 전시 과학관이라는 점이다.
제주도가 우주와 관련이 높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도시에 비해 불빛이 적어 별 관측에 유리하고, 아무래도 공기가 맑아 한라산이나 해안가 등 관측 명소가 여럿 생겼다고 한다. 일례로 '제주별빛누리공원'은 우리가 방문했을 때 별똥별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최소 100명은 넘게 있었던 거 같다. 이런 장점에 착안한 정부와 지자체의 관광 콘텐츠를 위해 개발된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방문은 우리의 휴가 기간 중 보조 일정의 하나였다. 그냥 우천을 피하기 위해 혹은 시간이 남는 차에 들르고자 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충실한 우주와 항공, 과학에 대한 알찬 전시와 안내가 나를 사로잡았다.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들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별, 행성과 같은 우주의 신비에 관심이 많았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천문 학자인 칼 세이건은 생전 인터뷰에서 "인간의 몸을 이루는 물질은 원래 별의 중심에서 만들어져, 별의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도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를 주장한다. 책에서 봤던 내용이 지금에서야 이처럼 와닿을 수 있다니. 경험은 언제나 우리를 더욱 깊게 성찰하게 한다.
나는 왜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생겨나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주의 작은 먼지 같은 지구. 그 보다 더 티끌 같은 인간이다. 누워서 별을 보는 자리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졸려서 그냥 잠이나 자러 들어갈 요량이었던 자리가 지금까지 왜 계속 내 머리와 마음속에 남아서 맴도는지 모르겠다. 이 나는 어떤 이유로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가. 그리고 우리 가족과 아내, 아이들은 어떤 인연으로 맺어져, 함께 별을 바라보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감동과 감사가 되어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서 맴돌고 있다.
제주도는 달리기 하기 참 좋다.
일주일 간의 제주에서의 시간 모든 게 좋았다. 절반은 날씨가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서울만큼 더웠지만, 그래도 땀은 덜 났던 거 같다. 러너의 입장에서는 제주도는 달리기 최적의 장소이다. 특히 건물들이 낮아 아주 멀리까지 보이고, 바다의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뛰면 내 마음도 뻥 뚫린 기분이 든다. 뭐, 언제나 여행런(Run)은 진리이다. 제주 와서까지도 달리기 참 잘했다.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 <다정한 매일매일>에서 휴가는 우리는 행복을 위해 가끔 '일상에서 괄호 안에 넣는 거'라고 한다. 잠시 불안한 현실과 거짓을 가둔 행위라는 거다. 너무 인상 깊어 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 문구가 오히려 휴가를 통해 '평소 일상에 매몰되어 괄호 안에 살고 있던 나'를 꺼내주었다. 괄호 밖에서 참 인생을 온전히 진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도 순식 간에 흘러가 결국 나도 먼지로 사라지겠지. 영원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최대한 열정적으로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지금 주변에 함께 하는 우리들의 관계를 소중히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나만을 중심에 두는 삶을 내려놓을 수 있을 듯하다. 우주만큼 넓은 세상에서 결국 우리가 연결되었기에 만나서 함께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많은 분들이 제주에 가면 꼭, 우주와 별을 보러 가셨으면 좋겠다.
나 같이 현실적이고 건조한 사람(?)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정말이지 우주와 자연은 인간을 깨닫게 한다.
정말 멀리멀리 달리게 해 준 제주의 여름이 아직도 어제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 마음도 우주까지 닿았다.
브런치북 연재 '적당히 달리니 인생이 달라진다'가 결국 다음 마지막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