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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달리니 인생이 달라졌다

(에필로그) 어떻게 달리는 게 가장 잘 달리는 걸까?

by 철봉조사러너
다시는 달리기를 할 수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병원에서 들렸던 이야기다. 실제로 원장님이 그렇게 까지 극단적으로 얘기는 안 하셨을 거 같은데, 내 귀에는 저렇게 들렸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15년을 넘게 달렸지만, 앞으로는 달리기를 다시 하기 어려울 거라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정말 요즘은 러닝이 대세다. 그런 시점이었기에 더욱 가 났었던 듯하다. 각종 미디어와 주변 사람들 모두 달리기, 러닝에 대해서 계속 언급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달렸을까? 그다지 달리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은 오래전부터,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기에 열정을 두었고, 잘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결국 다 끝났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달리기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거는 맞지만, 별로 할 이야기는 없었다. 그냥 매일 집착적으로 달리고, 기록을 올리고 남과 비교했다. 예전 나의 러닝 SNS 계정은 내가 잘 달린 기록에 대해서만 적어놓았다. 그건 그냥 나를 위한 달리기였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나는 없는' 달리기였다. 이런 식의 달리기로 인해 주변을 힘들게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 전문가,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 가장'으로서 과연 그게 올바른 방향이었는가에 대한 반성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나 자신을 너무 힘들게 했다. 끊임없는 남과의 비교. 난 정말 경쟁심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달리기는 집착했다. 남과 기록을 비교했고, 거기에서 오는 우월감에 묘한 기쁨을 느꼈다. 분명한 사실은 그건 달리기의 본질도 아니고, 행복이라는 지향점과도 맞지 않는다는 거다.



어느덧 나의 브런치 북 '적당히 달리니 인생이 달라진다'가 30회가 되었다.


이제 이 연재를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처음에 달리기 책 출간을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꼭 출간을 해야 하나 싶다. 이미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는 충분히 치유받았다. 너무 행복했다. 그건 꼭 출간이라는 목표보다 나에게 있어서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달리기를 할 수 있다. 즐겁게 러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15년 만에 진짜 러너가 되었다.


나의 '적달' 연재는 달리기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으로 시작해서, 어줍지 않은 달리기에 대한 노하우와 자랑으로 이어졌다가 달리기를 통한 인생의 성찰로 이어졌다. 그 중심의 키워드는 '적당히'이다. 조금 내려놓기 시작하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사실 '적달'의 초반부 연재 글들은 지금 보면 정말 '노잼'이다. 내가 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내용과 나름 노하우를 설명하지만 정말 열심히 달리시는 '러닝꾼'이나 운동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콧웃음을 칠만한 수준의 내용이다. 전문성도 많이 떨어지고, 솔직히 너무 감정적이다. 지금에 와서 초반 내 달리기 관련 글을 보면 뭐 이렇게 쓸데없이 진지한가 싶다.


[연재 브런치북] 적당히 달리니 인생이 달라진다


그래서 오히려 10회 이후부터의 글들이 마음에 든다.


10화인 '내가 100일 넘게 운동복을 세탁하지 않은 이유'는 더럽고 궁상맞게 운동하는 나의 내려놓은 달리기를 보여주는 글이다. 특히 요즘 같은 러닝 열풍, '스타일'이 중요한 시대에 ESG 친환경을 고민한 나만의 개성 있는 이야기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확장한 18화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요즘 마라톤 대회'는 요즘 러닝 열풍에 대한 무분별한 확장을 경계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넘어 진짜 긍정적인 달리기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10화 내가 100일 넘게 운동복을 세탁하지 않은 이유


18화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요즘 마라톤 대회



나의 달리기 글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글은, 11화 '가정 문제를 일으키는 마라톤 대회'19화 '6분 넘게 뛰면 러너가 아니라고 하던데요?'이다. 둘 다 달리기가 일으키는 부정적인 문제와 타인과의 비교가 건강과 관계에 있어서 해로움을 미치는 지점을 지적하여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몇 달 전의 글임에도 연관 검색어로 계속 조회수가 나온다. 정말 조화롭고 행복한 달리기가 중요하다는 지점을 생각하게 된다. 나의 '적당히 달리기'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11화 가정 문제를 일으키는 마라톤 대회

19화 6분 넘게 뛰면 러너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정말 10화부터 29회까지의 모든 글이 다 마음에 든다. 솔직히 부족한 필력을 가진 내가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매회 달리면서 느끼게 된 진심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 "달리기도 혼자 달리는 '혼런'이 최고야!"를 주장했던 내가 점차 함께하는 의미와 주변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공동체 감각'으로서의 달리기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적당히 달리게 되지 않았다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 경험이다. 이는 곧 나에게 달리기가 주는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달리는 게 가장 잘 달리는 걸까?


꼭 달리기를 열심히 하고 잘 달리는 게 훌륭한 러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모든 인생의 문제를 달리기에 거는 것도, 인생 자체가 달리기만으로 연결 짓는 게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까? 달리기를 하면서 다른 운동도 같이 하고, 수많은 일상의 과업들도 건강하게 챙기는 것이 진짜 잘 달리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다고 믿게 되었다.


수년간 나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키워드는 '달리기', '러너'였다. 사실 그 외에는 거의 없었다. 열심히 달릴 줄 아는 거 외에는 특별한 재능도 능력도 드러낼 게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달리기를 조금 내려놓으니 새로운 내가 드러났다. 운동을 덜하고 남는 시간에 독서브런치 글쓰기 등의 자기 계발을 통해 연구자로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내 콘텐츠로 강연을 하는 '강사'가 되었다. 점차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아마 갑자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달리기에서 얻은 꾸준함과 집중력, 체력이라는 습관은 나의 발전에 큰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러너에서 이젠 '연구자'이자 '강사'까지 추가되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깨닫게 되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적당한 온도와 감정에서 연결되고 이어져서 살아간다. 특히 우리 인생 같은 달리기도 그렇다. 함께 발과 호흡을 맞추고, 응원하면서 가야 한다. 그래야 더 멀리 갈 수 있다. 혼자 너무 무리하면 남는 건 없다. 결국은 같이 해야지 달리기가 마무리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여기까지 오는 데 참 오래 걸렸다...


함께 달려야 멀리 갈 수 있다.
이제는 달리기만 할 수 없다. 아이들과도 놀아줘야 하니까!


‘달리기에 대한 쓸데없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유익을 주는 기승전 달리기.’

‘나 홀로, 적당히, 느린, 재테크, 친환경 지속가능한 달리기, 그리고 함께 달리기까지.’

내가 느꼈던 이 행복재미가 많은 분들께 조금이라도 전달되었기를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브런치가 나를 치유해 줬다. 처음 브런치 작가로 등록했을 때는 러닝 작가를 위해,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담은 글을 쓰고자 작가에 도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못 가서 결국 몸이 아프고 난 이후에 달리기에 대한 글은 쓰지 못하게 되었다. 몸이 조금 나아진 올해 서부터야 다시 달리기에 대한 글을 썼다. 그렇게 쓰면서 치유가 되었다. 여전히 원인불명의 나의 몸은 완벽한 상태는 아니어도 운동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점점 몸도 좋아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땀 흘릴 수 있다는 게, 달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브런치 연재에서 함께한 여정은 나의 달리기와 몸과 일상 모두를 치유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내 인생에 더욱 중요한 새로운 더 큰 목표를 다짐해 본다. 이 당연하지만 너무 훌륭한 진실을 깨닫게 해 준 브런치에 감사한다.


그래서 모두 조금은 적당히라도 달려보시기를 권유드리고 싶다.


정말, 적당히 달리니 인생이 달라진다.

적당히 달리니 인생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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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적당히 달리니 인생이 달라졌다' 30회 연재 동안 응원해 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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