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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흰돌 Nov 20. 2023

아이를 볼모로 잡혀 좋아하던 떡볶이도 끊었다

임신성 당뇨에 걸렸습니다



  20주 차가 넘어가며 지독했던 입덧도 소강기를 맞았다. 입덧약을 챙겨 먹음에도 맛의 변형과 울렁거림은 여전했으나 편의점 김밥이 아닌, 냄새가 심하지 않은 음식에 조금씩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유산에 대한 불안도 크게 줄어들었다. 검진일마다 아이들은 주수에 맞는 크기로 잘 자랐고 기형아 검사에서도 정상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배가 조금씩 눈에 띄게 부르기 시작했고, 일자로 가만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부른 배에 가려져 발끝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래서 이때를 '안정기'라고 부르는구나 실감할 즈음 임신성 당뇨(흔히 임당이라고 부른다.) 검사 날짜가 다가왔다.


  검사 전까지 임당에 대한 두려움은 딱히 없었다. 격년마다 시행되는 직장 건강검진에서 당과 관련된 이슈를 지적받은 적이 없었을뿐더러 가족 중에도 당뇨로 고생한 이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많은 일을 겪어가며 세 아이를 출산한 우리 언니 역시 자신만만한 얼굴로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임당은 재검사 없이 무조건 통과했어!"라고 어깨를 두드려준 덕분에 나는 해맑은 얼굴로 임당 검사를 하러 갔다.


  결과는 재검사 당첨…….


  일주일 뒤 꼬박 세 시간에 걸친 세 번의 채혈을 통해 임신성 당뇨 확진을 받게 되었다.






  임신성 당뇨와 관해서는 산부인과가 아닌 내과 진료를 보았다.


  내가 다니던 여성병원은 큰길 맞은편에 여성병원에서 운영하는 내과가 있어, 임당 확진을 받은 뒤에는 정기 검진을 받을 때 산부인과에 들렀다가 내과에 들르는 코스를 밟았다.


  처음 확진된 날, 나는 내과 간호사 선생님께 임신성 당뇨 관리에 대하여 삼십 분에 걸친 설명을 들었다. 그걸로도 부족해 건네받은 책자를 내용이 외울 때까지 숙지했다.


  임신성 당뇨의 관리는 일반 당뇨 환자의 관리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당 수치를 급격하게 상승시키는 단순 당과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점은 동일하나, 뱃속 태아에게 영양분이 불균형적으로 제공될 것을 염려하여 그 외의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일반 당뇨 환자보다 더욱 강조된다.


  또한 일반 당뇨 환자들은 기본 '식이 요법+운동'으로 관리하는 데 반해, 임산부, 그것도 쌍둥이 임산부였던 나는 20주 차 중후반부터 조금만 무리하면 배뭉침이 생겨서 사실상 운동을 포기해야 했다. 그 대신 철저히 식단만으로 당뇨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마른 적도 없지만 또 심하게 살이 쪄본 적도 없는 나는 살면서 식단 조절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다이어트란 체중 문제라기 보단 마인드의 문제에 더 가까우니 식단을 조절할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위가 약한 탓에 늘 적당히 먹었고, 몸이 약해진다 싶으면 밥 한 숟가락 더 먹고 몸이 무거워진다 싶으면 밥 한 숟가락 덜 먹는 게 식이 조절의 전부였다.


  그런 내가 매일 세끼 정해진 분량의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등을 꼬박꼬박 섭취해야 한다고?


  특히 탄수화물을 엄격히 관리하여, 흰쌀밥 대신 현미밥을 먹고, 떡볶이나 칼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은 전혀 먹지 못한다고?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올 때만 해도 머릿속에는 '내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c)2023. delight.H(https://www.instagram.com/delight.hee/).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렇게 되었다. 나는 37주 2일 아이들을 낳으러 가는 날까지도 매일 건강한 끼니를 챙기고 당 수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식욕이 왕성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ㅎㅎ...)


  주스나 탄산, 과일은 어렵지 않게 참을 수 있었지만 밀가루, 그중에서 떡볶이만큼은 먹고 싶은 걸 참기 어려웠다. 그 결과 제왕절개를 위해 수술대에 올랐던 내가 마취되기 직전 떠올렸던 생각은 이러했다.


  아이를 낳으면 나는 제일 먼저 떡볶이를 먹겠어.
부평 역사에 있는 모녀 떡볶이를 먹을 거야.
가서 먹고 올 때도 잔뜩 포장해 와야지.
진짜로, 엄청나게 많이 먹을 자신이 있어.



  이 꿈이 실현되는 데는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출산 후 마침내 먹게 된 떡볶이는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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