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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Sep 27. 2024

고이 접은 마음

질투에 관한 이야기 2

 평범한 샐러리맨에 가정주부였던 부모님과는 다르게 친가 큰집은 부부 모두가 의사였다. 매년 명절이나 친할머니 생신이 되면, 우리 가족은 황토색도 아닌 밤색도 아닌 묘한 색의 포니2를 타고 큰집이 있는 원주로 향했다. 포니는 큰집에서 차를 로얄살롱으로 바꾸면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아빠는 늘 공짜로 받은 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큰집에서 넘겨준 포니2를 타고 원주로 가기 전날엔, 늘 더 깨끗하게 차를 단장했다. 숙제 검사받는 어린아이처럼.     


 그들이 누리는 모든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부부 의사, 그 이미지 그대로였다. 고급 세단은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철문을 통과해 부드럽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마당엔 빡빡하게 수놓아진 잔디, 넝쿨이 발을 디딘 아치형 조형물을 통과하면 묵직하게 열리는 현관문이 있었다. 우리 집 신발장 3배는 되어 보이는 곳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이 층으로 올라가는, 좁지만 묵직한 나무계단이 있었고 왼쪽에는 넓은 거실과 주방이 있었다. 1층 거실에는 ‘사도세자가 바로 저런 곳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다 생을 마감했던 걸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하는 오래된 뒤주가 있었다. 어린아이 둘 셋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진한 밤색 뒤주는 그 집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2층 서재에 들어가면 3면이 빽빽하게 책으로 덮여있었고, 구석의 작고 낮트막한 탁자 위에 성모마리아 상이 ‘조용히 하라’는 듯 놓여있었다. 




 가혹하게도 큰집에는 나보다 딱 한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잔인하게도 그 언니는 공부를 잘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라는 희귀한 인간이 내 사촌이라니. 동갑이 아닌 사실을 감사해야 할까? 나보다 예쁘진 않은 것 같은데, 다행이려나? 난 항상 홀로 링 위에 올라 허공에 열심히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삐딱하게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쳐들고 읽고 있는 사촌 언니의 모습은 상당히 꼴사나웠다.


‘평상시에 책만 읽고 공부를 안 하는데도 전교 1등은 항상 내꺼라니까’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무슨 책을 읽는궁금해 몰래 들춰보곤 했다. 중학교 1학년, 추리소설에 빠져있던 나는 언니의 독서 수준에 별수없이 마음이 쪼그라든다. 언니는 주로 중학생이 읽기엔 어려운 철학책을 읽고 있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두께에 압도당한 나는, 하나라도 내세울 없는 같은 마음이 되버려 조용히 책을 덮었다. 

 언니의 주변에는 ‘있는 집 자식의 필수 아이템’인 소니 워크맨이 널려있었다. 언제 또 새 워크맨으로 바꾼 건지, 전에 쓰던 워크맨은 주인을 잃은 채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승은을 입은 새 워크맨은 침대 위에 폭신하게 올라가 주인의 귓가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기 버림받은 워크맨은 더 필요 없는 걸까? 쓰레기통에 버리질 운명이라면 내가 구원해줄 수 있는데. 아니면 몰래 가져가도 모르는 것 아닐까?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구석에 누워있잖아.’ 또다시 나는 홀로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워크맨을 갖고 싶다고 엄마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예상했던 차가운 반응이었다. 엄마는 배부른 소리라고 내 마음을 요약했고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연이 언니는 워크맨이 세 개나 되는데 왜 나는 한 개도 배부른 소리야?”     


 갑자기 튀어나온 '연이 언니'라는 단어에 엄마도 아빠도 갈피를 못 잡는 눈치였다. 그런 모습에 나는 또 서둘러 ‘배부른 소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나처럼 큰집에 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비뚤어지겠지. 왠지 모를 위화감 속에 부럽고, 탐났겠지. 우리에겐 미안하고 눈치 보였겠지.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숨길 수 없는 감정들이 말없이 부딪히곤 했다. 그러니 내 ‘배부른 소리’는 또 고이 담아둘 수밖에.    

 

 그해 가을, 내 생일에 나에게도 카세트플레이어가 생겼다. 소니 워크맨이 아닌 삼성 마이마이였지만 브랜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 마이마이가 마치 우주에서 우주선 타고 내려온 선물인 것처럼, 매일 만지고 닦고 사라지진 않았나 확인하고, 온갖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잘 살아있나 플레이 해보곤 했다. 생명을 다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속으로 마이마이와 약속했었다. 분명 그때 나는 마이마이를 사랑했다.      




 한 살 많은 연이 언니는 지금 세상에 없다. 나랑 비슷한 나이까지 살아가며 평생 나를 열등감의 링 위에 올려놓을 것만 같았던 언니는 40대 초반이었던 6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언니가 떠난 후 사촌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언니가 나와 여동생을 많이 부러워했다고 했다. 서울 생활을 늘 동경했던 언니에게 우리는 ‘세련된 서울 사촌’이었나보다. 언니 눈에 우리는 ‘따뜻한 성품의 부모와 서울에서 예쁘게 살아가는 두 사촌 여동생’이었다고 오빠는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언니에게 직접 들었다면 내가 어릴 때 얼마나 언니의 삶을 부러워했던지 이야기 나누며 서로 깔깔 웃었을까? “어머 진짜?” 하며 누가 더 부러워했는지 배틀했을까? 어쩌면 술 한잔에 워크맨 이야기도 등장했을지 모르는데. 나누지 못한 속마음은 또 ‘배부른 소리’가 되어 고이 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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