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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Oct 01. 2024

틈만 나면 일탈

일탈에 관한 이야기 1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대문을 박차고 나간 뽀삐를 찾으러 온 동네를 울며 헤매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급한 마음에 신고 나온 신발이 하필이면 아빠 슬리퍼라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골목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밑을 샅샅이 수색했다. 뽀삐가 달려 나간 방향은 어느 정도 다 찾아본 것 같은데, 불현듯 ‘이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뽀삐야~ 뽀삐야~”     


 핸드폰이 없던 시절, 뿔뿔이 흩어져 뽀삐를 찾는 가족에게 연락할 방도도 없어서 그저 하염없이 손뼉을 치며 뽀삐를 불러 본다. 그렇게 목놓아 부르며 찾다 보면 주변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노을이 해의 그림자를 붙들고 기다려주는 그 시간이 지나면 어둠이 깔리고 영영 뽀삐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엄습한다. 심장은 더 빠르게 뛰고 동공이 확장되는 기분이다. 수색 범위를 어디까지 넓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이 뭔가 희뿌연 물체를 들고 있다.    

  

 “뽀삐 찾았어. 저기 경찰서 옆 놀이터까지 갔더라.”  

   

 고작 갔던 곳이 놀이터라니.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억울해서 화가 난다. 분명 뽀삐가 나간 방향으로 달려간 건 나인데, 검거된 곳은 정반대인 장소였다. 고도의 작전이었나, 얕은 눈속임이었나, 아님 정처 없이 뛰다가 놀이터까지 가게 된 것일까. 멀리 가지도 못할 거면서, 결국 또 잡혀 올 거면서, 매번 탈출을 도전하는 뽀삐의 모습이 살짝 애처롭다. 아빠 품에 속절없이 매달려있는 뽀삐는 두 귀를 한껏 내리고, 꼬리도 다리 사이로 말아 숨긴 채 최대한 불쌍한 모습을 연출한다.     


 뽀삐의 탈출, 오늘도 실패. 하지만 뽀삐의 일탈은 오늘도 성공!     




내 의지보다는 의무로 가득한 ‘집’이라는 공간의 흐름에 따라가다 보면 ‘후….’하는 한숨과 함께 매일 하는 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오늘 온종일 내가 뭐 했지? 나중에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하나라도 했을까? 진정 나를 위해 했던 일은 뭐더라?’


 매일 똑같은 루틴의 반복 속에서 묘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안정감도 언제부터인지 갑갑하고 따분하다. 또 조금은 두렵다. 죽을 때까지 지금 현재 반복되는 집안일에서만 전문가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그러다 더 이상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는 건 아닌지, 영원히 누군가에게 소속된 사람으로 남게 되는 건 아닌지.    



 어느 날 문득 요즘 내 마음이 그때 탈출을 꿈꾸던 뽀삐의 마음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색 철문의 틈처럼, 마음에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뛰쳐나가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다. 여기나 거기나 비슷하고 뻔할 거라는 생각은 언제부터인지 버렸다. 분명 지금 여기보다는 새롭고 나을 거라는 확신이 가득하다.  

   

 소극적 일탈을 위해 노트북을 연다. ‘글을 쓴다’는 루틴은 매일 똑같은 일상에 나 스스로 틈을 만드는 행위라 새롭고 가치 있다. 무언가를 쓰다 보면 나 자신과 서먹했던 일들이 점차 줄어들고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랑 친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사람, 듣고 싶은 말, 하기 싫은 표현. 나의 어떤 성격이 단점으로 확정된 계기, 숨기고 싶은 단점이 사실은 장점이었던 반전. 때로는 남들보다 좀 나은 내가, 때로는 남들보다 더 괴물 같은 나의 모습이. 쉽게 열어 보이지 못했던 마음이 글을 통해 조금은 편안하게 공개된다.      


 적극적 일탈을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러 집 밖으로 나간다. ‘타인을 만난다’라는 것이 늘 스트레스로만 여겨져 기피했던 예전의 나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살짝 열린 마음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타인의 애정 어린 간섭도 기껍고 반갑다. 아직 완전히 익숙하진 않지만, 타인의 다소 무례한 침입도 싫지만은 않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간단하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뛰어나간다. 아이들과 상황이 허락하는 그 짧은 30~40분의 틈을 빌려 나 혼자만의 일탈을 즐긴다. 그렇게 걷거나 뛰다 보면, 슬픈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좋다.


‘언젠간 한 번쯤 떠오를 생각이었겠지. 틈을 보이니까 나오는구나. 썩기 전에 나와서 다행이다. 여기 지금 내가 걷는 길에 다 버리고 돌아가야지.’     




 일탈을 통해 가는 곳이 고작, 노트북 앞이나 커피숍, 하천 옆 산책길이라고 비웃어도 나는 상관없다. 아마 뽀삐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고작 늘 가는 놀이터라고 주인이 비웃어도, 철문의 틈을 가만히 노려보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뛰어나갔던 뽀삐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숨 막히는 일상에서 나만의 틈을 기다린다. 설령 축 처진 모습으로 주어진 의무에 이끌려 돌아올지라도.   

  

 오늘의 일탈도 무리 없이 성공!! 이탈된 게 아니니까 상관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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