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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Mar 05. 2024

엄마의 김밥에는 비밀이 있다

"엄마 오늘 서준이 놀러 오는데, 점심때 김밥 싸주면 안 돼? 걔가 엄마 김밥 엄청 좋아하잖아."

"야, 김밥이 그렇게 도깨비방망이 뚝딱하듯 나오는 거니? 지금 와서 그러면 엄마 어쩌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딱히 해줄 만한 다른 음식도 떠오르지 않고, 대충 외투하나 걸치고 서둘러 동네 슈퍼로 향한다. 단무지, 우엉, 당근, 어묵.. 그리고 식초가 빠질 순 없다. 식초 한 컵, 설탕 한 컵, 소금 두 숟가락을 넣고 소금과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 바글바글 끓이면 온 집에 시큼 달달한 냄새가 퍼진다. 밥 한 주걱에 식초물 한 숟가락을 넣고 섞으면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김밥 냄새 그대로다.




김밥을 떠올리면 소풍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뒤이어 떠오르는 건 엄마의 팬티, 추운 부엌, 안방난로, 지글지글 닭 튀기는 소리와 식초냄새.

 어릴 적 살던 집의 부엌은 유난히도 추웠다. 마당으로 나가는 뒷문이 부엌 쪽에 있었는데, 얇은 철문에 큰 유리창이 달려있던 어설픈 뒷문은 바람이 심한 날에는 달달달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겨울이 되면 아빠는 문풍지도 달아보고 비닐도 씌어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애를 태웠지만, 부엌은 여전히 추웠다. 결국 아빠는 겨울이 되면 매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부엌에 안방난로를 켜두셨다.


 소풍 가는 날 아침은 엄마가 제일 일찍 일어나셔야 한다. 김밥도 싸야 하고 동생과 내가 너무도 기대하고 기다리는 닭튀김도 해야 한다. 부엌에서 나는 탁탁 소리와 고소하고 새콤한 냄새에 동생도 나도 부스스 일어나 곁으로 가보면 엄마는 항상 추운 부엌에서 윗옷이랑 팬티만 입고 요리를 하고 계신다.

늘 어릴 때 우리 집을 연상하게 했던 <구름빵> 동화책의 한 장면

"엄마 왜 맨날 추운 데서 팬티만 입고 요리를 해? 바지 갖다 줄까?"

"어 아니야, 엄마 잠이 덜 깨서 그래. 추워야 정신이 빨리 돌아오거든. 엄마 괜찮아."


 아침잠이 많아 이른 기상이 힘들었던 엄마의 고육지책이 나는 늘 맘이 쓰였다. 이제 그만 바지 입어도 되겠구먼, 엄마는 바지입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고 한다. 그렇게 맨다리로 아침을 재촉하던 엄마는 소풍 가는 날이면 우리 김밥 도시락에 닭고기까지 튀겨서 정성스럽게 담아주셨다.


"우리 애기가 젤 좋아하는 게 이거지?"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찡긋하는 엄마의 그 표정을 보면

'우리 엄마 많이 힘든 건 아닌가 보다 다행이다.

그리고 너무 신난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달콤 새콤한 맛이 나서 질리지 않고 계속 손이 가는 엄마의 김밥에는 식초물이라는 비법 양념이 꼭 들어갔다. 사실 비법이랄 것도 없지만 당시엔 식초물을 넣은 김밥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단무지도 시큼해서 더 이상의 식초는 필요 없을 것 같은 김밥이지만 식초물이 들어간 김밥은 달콤함이 한층 가미되어 별것 넣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은 김밥이 된다.  


 내 김밥을 먹어본 친구들은 절대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자기 거랑 하나 바꿔먹자며 성화를 해댔다. 아깝지만 으쓱한 그 마음은 나의 소풍을 최고의 어릴 적 추억으로 만들어주었다. 김밥옆에 있는 닭튀김은 너무 소중해서 아무도 안 주고 혼자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배달치킨이 흔한 음식이 아니었던 그때 엄마가 팬티바람에 튀겨준 닭튀김은 내 맘 속에 자랑스럽고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코로나가 일상을 강타하기 전, 나도 아이들의 소풍을 위해 김밥을 여러 번 쌌다. 처음 김밥을 쌌을 때는 내 김밥이 너무 평범해서 아이들 싸주기 민망한 정도였다. 햄대신 비싼 불고기를 넣어도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뭐가 문제일까 궁금해진 나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비결은 김밥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김밥에는 무조건 식초물이 들어간다. 그때부터 내 김밥은 입소문을 타게 되어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김밥이 되었다. 소풍이 끝난 후 이집저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니 준이네 집 김밥 먹고 우리 집 애가 좀 배워오라네. 김밥에 뭐 넣은 거야? 알려주라~."

"다음에 김밥 쌀 때 나 딱 한 줄만 주면 안 돼? 먹어보고 싶어서 그래~~."

"김밥 할 때 나 좀 불러. 내가 도와줄게. 비결도 배우고~~."


 그런 부탁에 행복해진 나는, 아이들 소풍날 우리 아이 것 말고도 여러 개의 친구들 도시락통을 미리 받아놓고 당일 아침 김밥을 싸서 돌리곤 했었다.

 요즘은 가끔 엄마가 오히려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김밥 좀 싸 오라고 하신다.

 "윤희야 우리 이번에 공원 갈 때 김밥 싸가자. 엄마는 안 싼 지 오래돼서 이제 잘 못해. 엄마는 니가 싼 김밥이 제일 맛있더라~."


 오늘 같이 김밥 싸는 날엔 꼭 두세 줄씩 근처 사시는 엄마네로 배달을 간다. 엄마에게 김밥을 싸드릴 때는 살짝 긴장이 된다. 김밥 전수자에게 검수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직도 숙제 검사받는 어린아이처럼 엄마의 평가를 기다린다. 김밥 간이 딱 맞아서 아빠랑 맛있게 드셨다는 연락이 오면 그렇게 기분이 뿌듯할 수가 없다. 김밥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를 초등학생으로 돌아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김밥을 때마다 추운 부엌에서 잠을 깨워가며 김발을 정성스럽게 말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엄마가 힘들었지만 나에게 윙크를 하며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지어주었던 그날이 기억난다. 내가 김밥이 좋은 건, 또 많은 사람들이 김밥을 좋아하는 건 '소풍의 설렘, 엄마의 사랑, 그날 하루 나를 위한 특별한 요리'라는 그 모든 것의 덧셈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아들의 기억 속에 나의 김밥이 오래 추억되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김발을 굴려본다.



앗, 급히 준비하다 보니 시금치가 빠졌다. 그래도 식초물이 있으니 걱정 없다. 아들 역시 엄지 척!!

(식초물 레시피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제 매거진 <주간 포스트잇>에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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