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글은 쓰는 사람의 인생과 캐릭터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글이 재밌으려면 일단 재밌는 일생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 인생이 즐거울 수가 있냐고? 인생이 재밌는 사람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들뿐이라고?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가’ 까지는 운이 맞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이렇게 사는 것은 운명이 맞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해진 운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바꿀 수도 있다. 그러니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해 보자. (P291)
인생을 재밌게 살아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른들이 안 된다는 행동이나 선택은 최대한 피하고,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무게를 두고 살아왔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하고 후회가 남을 때도 많았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 어떤 모습,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중문과를 가지 않고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더라면?
통번역 대학원 준비를 하지 않고 회사에 취직했더라면?
결혼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정말 그냥 무산시켰더라면?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에게 남은 생은 흘러간 시간보다 훨씬 재밌어질 수 있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내 인생이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에 정박될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종종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한다. 아는 맛과 모르는 맛. 나는 주로 아는 맛을 골라왔는데 이제는 일부러 모르는 맛을 고른다. 이것이 비단 음식에 대한 비유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종종 모르는 맛이 충격적일 때도 있다. 원치 않는 끔찍한 결과나 고약함을 선사한다. 최악일 때는 왜 최악인지 분석해 본다. 백종원 대표는 잘되는 가게보다 망한 가게를 통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의 선택도 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움이었다면 그걸로 됐다. - 이연 작가의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P41
글 쓰는 행위 자체가 나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인데 글에 인생과 캐릭터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내 글을 읽었던 독자분과 인친(인스타 친구)분들 중 몇 분들이 ‘글에 차분함과 발랄함이 함께 있어요’라는 평을 남겨주셨다. 심지어 들장미 ‘캔디’ 같다는 말을 해주신 분도 계셨다. 처음에는 흔한 칭찬의 댓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평가를 몇 차례 듣다 보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소심해서 말 수 적은 나에게 ‘발랄함’이라는 캐릭터가 숨어있었나? 고분고분 지시에 순응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캔디라고?
글쓰기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내가 드러나는 과정인 것 같다.
내 글에 조금 드러나는 위트의 뿌리는 아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예상하지 않은 포인트에서 웃음을 주는 능력을 지닌 분이다. 전혀 동떨어진 문제와 지금 벌어지는 상황과의 연결도 늘 기가 막힌다. 기본적으로는 과묵한 성격이라 말이 없다가 갑자기 툭 끼어들어 한마디 던지는데, 그 말들이 모두 담담하게 핵심을 찌르는지라 곱씹을수록 재밌다. 아빠를 만나고 집에 온 날은 여지없이 그날 나눈 대화의 한 부분이 떠올라, 하던 일을 멈추고 웃게 된다. 아빠는 내가 웃으면 항상 “쟤 또 저런다”하시며 핀잔을 주시지만 아빠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아빠와 있을 때는 나는 주로 듣는 사람, 웃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늘 아빠의 유머를 동경해 왔고 동경해 오면서 조금은 나도 배워온 것 같다. 상대방의 말은 들으면서 웃음 포인트를 끌어내거나 심각한 상황을 살짝 비틀어서 유쾌하게 받아치는 유머 코드를 가진 사람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일부러 재밌는 인생을 살려고 하면 글에도 억지가 묻어날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슬픔도 아픔도 그 끝에 위트가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울 수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는 순간의 이야기도, 온갖 고생과 시행착오가 난무하는 이야기도, 글 속에서는 새로운 웃음 코드를 장착하고 독자에게 위로와 웃음을 줄 수 있다. 그렇게 쓰다 보면 내가 몰랐던 나의 '작가 캐릭터'도 탄생 되고, 인생은 점점 더 새롭고 재밌게 변해갈 수 있다.
아무렇게나 쓰는 글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거나 써보려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했던 일, 궁금했던 일, 재밌었던 일, 슬펐던 일, 그런 일들이 어떤 이야기로 태어날지 나도 모른다. 이번에는 확실히 '모르는 맛'을 고른 기분이다.
이번 연재북 <걍 쓰는 삶의 흔적 1>은 편성준 작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고르고, 그 문장을 읽으며 스쳤던 나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연재북이었습니다.
이 책을 골라서 읽고 연재북으로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살짝 웃기는 글'을 쓰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웃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는 책. 슬픈 이야기는 한 줄도 없는데 다 읽고 나서 눈물이 흐르는 책. 우리는 그런 책을 '나의 인생 책'으로 꼽곤 하잖아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떤 글을 쓰는가 보다는 그저 '글을 쓰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쓰는 길이 정녕 맞는 길인가, 자꾸 뒤돌아 보지 말고 삶의 단상을 끝없이 수집하고 그 부활되지 않은 허접한 알을 반짝이는 글로 부화시키는 길, 결국 편성준 작가님도 그 길이 우선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 아무거라도 써볼 수밖에요.
책의 에필로그 가장 마지막에 있는 문장을 소개하며 연재북을 마치겠습니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도 재밌는 글쓰기를 하고 싶은가? 아니면 글쓰기를 함으로써 재밌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시작하시라. 시작이 곧 성공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선언서가 보증하는 글쓰기의 진리다.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