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bra윤희 Aug 29. 2024

너나 잘하세요

feat. 편성준 <살짝 웃긴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사요나라, 갱들이여』,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같은 소설로 널리 알려진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글을 빌려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이나 기억이라는 것은 ‘흠씬 두들겨 맞은 개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얻어맞은 개는 몹시 겁에 질려 있기 때문에 누군가 사랑해 주려는 마음으로 다가가도 냅다 도망쳐버린다. 그래서 잡으려 하지 말고 곁에서 같이 놀아주어야 한다. 즉 어깨의 힘을 빼고 상상력과 함께 드러누워 놀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얘기다. ( 편성준 <살짝 웃긴 글이 잘 쓴 글입니다> p212)     


 중년여성이 돼버린 지금 뒤돌아보니 무례한 사람에게 뭔가 강력하게 대처한 적이 없다. 화를 낸 적도 웃으며 비수를 날린 적도 그 자리에서 울어본 적도 없다. 혹시 '나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은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말처럼 얻어맞은 개가 되어버린 것 같다. 기억하려 다가가도 자꾸 도망가고 잔뜩 겁에 질려 ‘나 좀 가만 놔둬’라고 소리 지르며 단단한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기억에 남는 것은 밤에 혼자 누워서 벌떡 일어나 앉아 씩덕거리거나 허공에 이불킥을 했던, 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뿐이다.  그래서 그 숨어있는 기억을 잡으려 하지 않고, 같이 놀아보자며 꼬시면서 기억 속을 휘져어 본다.    





 상대가 잔잔하게 무례의 대사를 던지면, 쏟아져 나가지 못한 말들과 당황한 마음으로 비좁아진 심장이 빠르게 쿵쾅댄다. 어떤 말이라도 꺼내면 심박 수가 잦아질 것 같은데,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빨라진 심장 때문에 피는 얼굴에 쏠린다. 고장 난 심장 때문에 발끝은 차갑게 식어 딱딱해져 버리고 몸은 어디로도 향하질 못한 채 그 자리에 뿌리내린 듯 우두커니 서 있게 된다.


 대학생 시절 무례함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남자가 있었다. 조교로 함께 활동하던 남자아이와 ‘중국불교철학’ 수업을 듣던 날이었다. 몸살감기가 오려하는지 으슬으슬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어지러움 때문에 엎드려있었다. 조교로서 교수님께 드려야 할 서류가 있어 그 아이에게 부탁했다.


 “이 서류 네가 교수님 가져다 드릴래? 난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서류 드리기만 하면 되니까, 부탁해.”

 돌아오는 답변은 폭력에 가까웠다.

 “안될 것 같은데. 나도 생리 중이거든.”


 찰나였지만 생리 중이 아니라 정말 컨디션이 안 좋은 거라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결심도 있었다. 폭력적인 언사에 잠시 쿵쾅대선 심장이 의외로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극혐’의 표정이 드러난 것 같다. 그 남자는 급히 드러냈던 음흉한 표정을 거두고 친절의 가면을 쓴다.


 “농담이야 농담. 당연히 내가 대신 가져다 드려야지. 약 먹었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상대의 무례한 언사에 센스 있는 한 방을 날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살면서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한 번도 대차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은데, 화면 속 연기자들의 속 시원한 '한 방'을 보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부럽다.


 뭐라고 응했어야 이불킥을 피할 수 있었을까?

 “어쩐지, 니가 남자 같진 않았어.”

 “너도 생리하는 줄 몰랐네?”

 아님 정말 뜬금없이 “응, 너도 예뻐.” 이런 식의 대답은 어떨까?

 그랬다면 그 아이가 극혐의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떤 말이 든 뱉지 못했을 것 같지만,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렇게라도 혼자 시나리오를 만들어 중얼거려 본다.       




 온라인은 무례한 사람들의 천국이다. 익명이라는 보호막 뒤에서 던져진 ‘제멋대로 예리한’ 언어의 조각들이 우리의 마음을 긁고 할퀴고 못쓰게 만든다. 여기 브런치스토리도 예외는 아니다.


말이라는 흉기에 찔린 상처의 골은 너무 깊어서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다. 어떤 말은 그 상처의 틈새로 파고들어 감정의 살을 파헤치거나 알을 낳고 번식하기도 한다. 말로 생긴 상처가 좀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이기주 <말의 품격> P193)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둔감력’ 혹은 ‘회복 탄력성’이란 키워드가 우리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마음의 근력을 의미하는 이런 단어들은, 타인의 말에 쉽게 영향받지 말고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마음의 힘을 키워가라는 조언을 담고 있다.


 그 당시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무례함에 상처받은 나를 스스로 더 아프게 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극혐’의 표정, 그거 하나면 되었었다.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적극적인 대처’ 일지 모른다. 그들은, 얼굴이 달아올라 자신을 향해 던지는 나의 무례함을 보며, 짜릿하여 환호하고 승리에 도취되어 악한 마음을 더 키워갔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타인에게 똥을 던졌는데 똥이 떠났으니 자신의 손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마음에 똥이 자라고 있을 텐데. 그 악취는 분명 본인만 모르고 있겠지. 누구에게나 고유의 향기가 있는데, 그 사람들의 악취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런 구린내에 둔감해질 때도 되었다.


이전 08화 항상, 선택은 당신의 몫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