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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선별 작업

삶의 냄새로 바뀌다

by 바다빛 글방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는다. 오래전, 몇 억의 빚이라는 거대한 무게가 우리 가족을 짓누르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식당일에도

뛰어들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갈치 공동어시장의 고등어 선별 작업이었다.

세월이 흘러 생활은 안정되었고, 먹고사는 걱정은 덜었지만, 나는 아직 젊은 할머니이자 젊은 엄마다.

나의 노후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종잣돈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나는 오늘도 내 발로 자갈치 공동어시장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뛰어든다.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고등어 작업. 낮의 활기가 잠든 줄 알았던 어시장은 오히려 더 뜨겁게 들끓고

있었다. 밝은 조명 아래 축구장보다 더 큰 공간에 은빛 고등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모습은 흡사 고등어 산 같기도 하고, 하늘의 은하수가 땅으로 쏟아져 내린 듯하다.

나는 이 거대한 비린내 나는 고등어 산 앞에서 망설일 틈도 없이 장화와 앞치마를 둘렀다.


"언니, 이거 엄청 커!"

"반장님, 고등어 말고 다른 생선 담을 박스가 없어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고등어 떼를 보며 손을

빠르게 욺직였다. 크기별로,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 선도에 따라 고등어를 선별하는 작업.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일하다 보면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파오고, 얼음 때문에 손은 퉁퉁 불어 시려온다.

6시 경매가 시작되기에 화장실 갈 틈조차 느낄수 없다.


"자자, 빨리 서두릅시다! 경매 시간 다 되어 간다고!"


새벽 5시 반, 마침내 모든 고등어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비린내가 온몸에 스며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더 이상 역겹지 않았다.

오히려 땀과 함께 베어든 삶의 냄새처럼 느껴진다


"수고했어요, 언니. 작업 끝났어요! 커피 한잔들 하시고, 저는 먼저 퇴근합니다.'


어 시장을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 동이 트고 있다.

붉은 해가 바다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모습은 그 어떤 영화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어젯밤 어시장에 들어섰던 나와 지금 이 아침을 맞이하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

고단함과 비린내 속에서 나는 나의 강인함을 발견하곤 한다.

지난밤의 고등어들이 각자의 크기와 모습대로 분류되었듯, 나 또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도 괜찮다. 모든 경험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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