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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당에 핀 쓸쓸한 추억

엄마...

by 바다빛 글방

매년 명절이면 강원도 엄마 집은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식구들이 모여 마당을 가득 채웠고 웃음꽃이 만발했었다.

형부와 제부들은 솥뚜껑에 고기를 구우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육 자매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조카들과 아이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윷놀이를 했고

대문에 묶여 있는 복실이 강아지는 뭐가 신이 났는지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3천 평이 넘는 밭에는 오리, 닭, 꿩, 토끼, 오골계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있었고

엄마가 농사지으신 고추며 깻잎.. 등 수십 가지의 나물과 야채들이 가득했었다.

시골집 풍경은 단순히 명절 풍경이 아니라 어쩌면 그리워했던 가족의 따뜻함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했고 무엇보다 언니와 동생들과의 밤이 새도록 재잘재잘 떠드는 수다도 좋았다.

하지만 이제 그 집은 사라졌다.


엄마가 떠나신 후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작년 12월 암으로 엄마는 돌아가셨고, 엄마의 부재는 나의 마음속 깊은 구멍을 남겼다.

재산 분배 문제가 덧입혀지면서 상처는 더 깊어져 버렸다.

언니와 동생들에게만 재산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집은 더 이상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원망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어느새 엄마를 향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엄마를 미워하는 이유가 단순히 재산 때문일까?

어릴 적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 부모로부터 학대와 폭력 고문에서 벗어나 혼자 고아원 생활을 하며 겪었던 외로움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나 보다. 어른이 되어 엄마와 재회하고 명절 때마다 그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어쩌면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우려 애썼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가족이고.. 사랑받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재산에 나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에게 나는 그저 재산 목록에서 빠져도 되는 존재였구나.............

그 서운함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었던 인정받고 싶었던 나의 오랜 바람이

산산조각 난 아픔이었다.

신랑은 나에게 물어본다

"혹시 장모님 재산 탐냈냐"라고 물었을 때 솔직히 나의 마음을 온전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재산을 탐낸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탐냈던 것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복잡한 감정이었으니깐..

이번 명절은 북적이는 강원도 대신 조용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야겠다.

내 안의 상처와 마주하고 이제는 스스로를 사랑해 주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일이란 것을...


엄마에게...

엄마.. 나야

이제는 아무도 없는 강원도 집 앞에서 덩그러니 서 있는 나를 보며 이 글을 써

수십 명의 식구들이 모여 왁자지껄 웃던 그 마당에 이제는 차가운 바람만 맴도네

엄마가 떠난 후 나는 매일 밤을 뒤척이며 나 자신에게 수 없이 물었어.

왜 나는 이토록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걸까?

어릴 적 날카로웠던 엄마의 말들 폭력. 폭행. 고문. 따뜻한 눈빛 한번 주지 않았던 엄마의 차가운 뒷모습

때문일까? 왜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는 걸까?

나 자신에게 수없이 되묻고 질문을 하고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했어

. 엄마의 유언에 나만 쏙 빠진 재산.. 다른 형제들에게 나눠주고 나만 쏙 빠져 버린 그 재산 때문일까?

재산을 탐낸 게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도 사실은 엄마의 유산 목록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서운했나 봐.. 어쩌면 나는 재산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바랐던 것 같아

평생 한 번도 온전히 받아보지 못했던.. 그래서 더욱 갈망했던 그 사랑 말이야..

엄마손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으니...

결국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산 목록에서도 내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 엄마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구나 하는 확신을 줬던 것 같아

엄마 솔직히 나는 아직도 엄마를 온전히 용서하기는 힘들어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내가 진정으로 싸워야 할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상처라는 것을.....

이제는 엄마가 아닌 내 안에 있는 나를 안아주고 사랑해 주려고.

엄마 부디 그곳에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하기를 바라

엄마를 미워하는 나를 용서해 줘

그리고 혹시 가능하면 다음 생에는 엄마와 내가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

.. 딸이...


카카오스토리_2025_09_22_18_18_21[1].jpg 가족여행에서 나에게 유일하게 있는 한장의 엄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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