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마라톤 도전
작년 7월, 집 근처 마트에서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친구가 있다.
이름은 주현이. 섬세하고 여린 마음을 가졌지만, 왠지 모르게 그 눈빛에 드리워진 짙은 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마주칠 때마다 건네는 짧은 인사 뒤로, 나는 그녀가 세상의 모든 문을 굳게 닫고 약병에
기대어 위태롭게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혼의 아픔과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자궁암 수술이라는 무거운 시련을 겪은 주현이는,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듯 지내는 주현이가 너무나 가여웠다.
나 역시 비슷한 아픔의 무게를 겪어본 터라, 그 외로움과 무력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따뜻한 햇살 대신 차가운 방 안에 머무는 주현이에게 나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주현아 우리 매일 저녁, 조금씩만 걸어볼래?"
나의 제안에 주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운동은 질색이야, 그리고 나는 있지 혼자가 편해."라며 거절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주현아 괜찮아, 잘 뛰지 않아도 되고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되고 그냥 천천히 너만의 속도로 천천히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되는걸... 뛰지 못하면 빠른 걸음도 괜찮아.. 일단 같이 걸어보자."
나의 진심 어린 속삭임에 주현이는 마침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4월의 어느 날, 우리 둘만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겨우 2킬로를 걷는 것도 버거워했다.
주현이의 발걸음은 힘없이 주저앉았고, 숨음 금방이라도 멎을 듯 가빠왔다.
약해진 몸은 고통을 토해냈다.
발톱이 빠지고, 발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주현이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친구의 걸음에 내 걸음을 맞추고, 친구의 숨소리에 내 호흡을 조절했다.
함께 발을 맞추고, 함께 땀을 흘렸다.
우리의 달리기는 경쟁이 아닌,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따스한 배려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올 무렵. 문득 주현이를 보니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멈춰 서서 나를 기다리던 주현이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약했던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힘없이 축 처졌던 어깨는 활짝 퍼져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주현이의 허락 없이 턱 하니 마라톤 10킬로 코스에 접수를 해버렸다.
주현이는 당황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주현아 이왕 접수한 거, 완주하는 것이 너의 숙제란다 ㅎㅎㅎ."
"뭐 네가 정 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이왕 시작한 거 도전해봐봐 할 수 있으니깐.."
이것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의 나약함에 도전하는 출사표였다.
마침내 대회 날. 벅찬 설렘과 긴장 속에 출발선에 섰다.
10킬로의 길고 긴 여정 동안, 주현이는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힘들어서 중간에 걸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 모습에 나는 목이 메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힘을 북돋아 주었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함께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주현이는 연습 때보다 훨씬 좋은 기록인 1시간 정각에 완주해 냈다.
첫 마라톤 도전에서 1시간 완주라니! 벅찬 감정으로 친구를 바라보니,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은 그동안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을 딛고 일어선 값진 승리의 선물이었다.
목에 걸린 메달을 꼭 쥔 주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고마워. 달리기 시작하고 나서 약 없이도 괜찮아졌어. 몸이 건강해지니 마음도 건강해지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껴... 너 덕분이야."
4월, 느릿한 첫걸음부터 시작해 피멍 들었던 발을 끌고 기어이 10킬로를 완주해 낸 주현이를 내 두 눈으로
지켜봐 왔기에, 그 진심 어린 고백은 너무나 짠하고 먹먹하니 나 역시 눈물이 났다.
차가운 약병이 주던 위로보다, 함께 걷고 뛴 이 소중한 시간이 친구의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삶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의 손을 잡고 끝까지 함께 나아갈 것이다.
멈추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작년7월에 알게된 새로운 친구 주현이..우리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