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이라는 감정
어느 날 TV뉴스에서 '모바일 뱅킹 활성화, 부모 세대의 스트레스'라는 기사를 보았다.
화면 속 부모와 자식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요즘 나는 디지털 세상의 '길치'가 된 기분이다. 마음은 아직 쌩쌩한데, 손끝은 자꾸만 삐걱거린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세상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 감성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아 괜히 작아진다. 은행 업무는 물론, 식당에서 주문할 때조차 키오스크 앞에 서면 머리가 하얘진다.
며칠 전, 딸아이에게 온라인으로 물건 주문하는 것을 부탁했다.
딸은 "엄마도 자꾸 못한다고 하지 말고 배워서 해봐. 충분히 할 수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에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잠시 2분이면 끝날 일을 두고 , 왜 내 딸은 귀찮아하는 걸까.
2분이라는 시간마저 엄마에게 내어주기 싫은 걸까.
그런데 문득, 딸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 하루 종일 바쁠 텐데, 퇴근 후에도
엄마의 디지털 문맹을 해결해 주느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그동안 당연하게
'부모니까 자녀를 다 키웠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자녀도 부모를 다시 키워야 하는 ' 시대가 된 것일까.
마음은 누구보다 빨리 배우고 싶다.
컴퓨터 문맹에서 탈출하고 싶다. 하지만 설명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돌아서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지금껏 나 자신에게 '못한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왔던 것은 아닐까...
자녀에게 부탁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핑계로,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 핑계로, 스스로에게 한계를 만들었던 건 아닐까... 마음은 앞서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보다, 내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내 안의 깊은 감성을 되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디지털 문맹은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가는 시대에,
우리 부모 세대가 소외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절차 없이, '느려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쉬운 디지털 기기와 단순한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디지털 교육을 한다지만, 실제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맞춤형 교욱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은행 창구에 서면 직원이 친절하게 도와주던
예전처럼, 키오스크 앞에도 우리를 도와줄 디지털 도우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딸은 늘 나에게 "엄마는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이제야 온전히 가슴에 와닿는다. 어쩌면 딸은 내가 다시 내 삶의 주체가 되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서운함의 감정을 딛고, 나는 이제 스스로의 속도로 디지털 세상의 문을 열고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게 나 지산을 위한 길이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더 이상 부담이 아닌, 든든한 존재로 남는 길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