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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월 Jan 10. 2024

장래희망

나에게로 향한 바람

 나는 느린 아이였다. 무엇이 느렸는가 하면, 첫째로는 성장이 느렸다. 왜소한 체격에 팔다리는 따로 노는 몸치였다. 그래서 몸을 쓰는 것이 싫었고, 체육시간이면 벤치에 앉아있었다. 외향적인 사람 중에 가장 내성적인 나. 느린 성장이 지금의 성격을 만든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자아 발견이 느렸다. 나라는 인격체에 대해 지독히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때가 되면 특수능력이 생겨서 비범한 삶을 살게 될 줄로만 믿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형과 함께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됐다. 그곳은 뛰어다니면 안 되는 곳이었다. 나는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선 몸을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만 까딱거리면 되었다. 나는 그것에 자신 있었다. 반면에 형은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해 온 형은 따지자면 보더콜리였고, 나는 말티즈였다. 수백 명을 가르친 피아노 선생님도 보더콜리를 묶어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만 학원에 남게 되었다.


 게으른 나는 피아노에 열중하지는 아니했다.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피아노 학원엔 연습 카드라는 것이 있었다. 사과나 딸기 등 과일 모양이 연달아 한 줄씩 그려져있고, 연주 한 번을 마칠 때마다 연필로 과일 속을 색칠했다. 그것으로 연습량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나는 연주 한 번에 과일 두 개를 칠했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학원을 오래 다녔더니 연주가 들어줄 만큼은 되었다. 또래 아이들이 방에 들어와 연주를 듣다 가기도 했고, 콩쿨에 나가서 상을 몇 번 타오기도 했다. 어느새 장래희망란에 '피아니스트'를 적게 되었다. 장래희망을 소개하는 때가 있으면 연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겠노라 공언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현재, 나는 한 상장사의 회계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였던 장래희망은 외교관으로, 래퍼로, 후에는 공무원으로 변모했었다. 앞서 적은 직업들과는 무관한 지금 직업은 회사원. 지극히 평범하게도 사직서를 마음에 품은 채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장래희망을 이루지 못한 기분은 어떠하냐면, 그저 덤덤하다. 살다 보니 장래희망이란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의 내가 바라던 미래보다, 지금의 내가 바라는 현재가 더 소중하다. 나의 손가락은 굳었으며 이제는 기억하는 악보도 없지만, 피아노를 치던 때의 즐거운 나날들과 그로 인해 만들어졌을 풍부한 감수성으로 족하다.


 여기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 하나가 남아있다. 중학교 2학년부터 힙합 음악에 빠져 래퍼가 되기를 희망했다. 마침 같은 반 친구와 마음이 맞아 함께 힙합 크루를 만들었다. 랩 노래를 녹음하여 주변인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길거리, 문화회관 등에서 공연도 여러 번 했다. 주변에서 꽤 인기를 얻어 학교 축제에도 나갔었다. 그때엔 피아노와 달리 열정이 있었다. 언젠가는 다이나믹 듀오의 공연 대기실에서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공연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던 것도 친구의 이탈로 풀이 꺾이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면서 자연스레 놓아주게 되었다. 힙합은 그렇게 내 인생에서 하나의 추억거리로 매듭지어지는 것 같았다.

 대학 졸업이 다가오면서 취업 준비를 할 때에, 우연히 한 회사에서 면접 제의를 받았다. 내가 원하던 규모, 원하던 직무의 기회였다. 이력서에 기재된 취미란에 '작사'가 쓰인 걸 보고는 면접관이 물었다. "작사라면 가사를 쓴다는 말입니까?"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럼 노래도 좋아합니까?" 노래는 아니고, 랩을 했었다 답했다. "보여줄 수 있습니까?"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까짓것,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쓴 가사로 무반주 랩을 했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면접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준 것으로 제 역할은 다했다. 그 당시 면접관이 지금의 실장님과 팀장님인데, 여러 의미에서 대단하다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회사에서 3년 넘게 일을 하고 있다. 비록 포기했던 장래희망일지라도 들였던 노력은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써먹을 수 있게 된다. 스물다섯의 내가 면접장에서 랩으로 점수를 딸 것을 열다섯의 나는 몰랐다. 여기서 존경하는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다만 랩이 좋아서 취미라는 점을 하나 찍었을 뿐이었다. 살면서 하나씩, 하나씩 찍었던 그 취미라는 점들이 어느샌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었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장래희망은 나를 스치는 바람이었다. 때로는 가만히 맞고 서있기도, 때로는 따라가기도 하였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람은 이내 곧 흩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바람은 나를 올바른 곳으로 인도했다.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그것은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행복하기를 소원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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