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에서의 기억
퇴근길에는 시장을 지난다. 자주 가는 채소가게에서 주로 양배추, 가지, 양파, 마늘 등을 사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채소가 있다. 잘 가다듬은 빗자루 같기도 하고, 빽빽하게 잎이 돋은 대나무숲 같기도 한 두릅이 그것이다. 두릅의 제철은 봄이지만, 추워지는 날씨에도 매대에 올라있는 것을 보니 하우스 재배도 가능하구나 하고 추측하여 본다. 아무튼 두릅을 볼 때면 생각나는 시절이 있다. 그 빛깔처럼 푸릇하고 자연스러운 향취를 뿜어내던 대학생 시절이다.
16년 봄,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군 입대를 기다리며 거제에서 생활했었다. 유럽여행 때 한 푼 두 푼 어머니에게 꾸었던 돈을 갚으려고 건설 현장 일용직, 이른바 '노가다'를 나갔다. 여섯시면 집을 나서서 자전거를 타고 40분, 체조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하루의 고된 노동. 세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특별한 경험이다.
그 일은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대뜸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라 하던 아저씨, 조선소에서 직장까지 달아봤다며 과거의 영광에 살던 아저씨, 이빨이 새까맣게 썩어 발음이 새지만 웃는 얼굴이 보기 좋던 성실한 아저씨.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목수반장님이 기억에 남는다.
목수반장님은 나의 부모님 또래였는데, 말씨만큼이나 다정한 분이셨다. 늘 짙은 색 플란넬 셔츠나 옥스포드 셔츠를 입으셨고, 팔 토시를 끼고 다니셨다. 멜빵까지 한 그의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이 흉내 내는 빈티지의 정석이었다. 그러나 구제시장을 열 바퀴 돌아도 그처럼 자연스러운 멋을 풍길 수는 없으리라. 덧붙여 그의 두껍고 짙은 눈썹은 일에 대한 고집을 잘 드러내는 듯했다. 그는 내 또래의 아들 둘이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나를 본 것이었다. 나는 중곡동이라 답하였고, 그럼 지나는 길이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태워주겠다는 것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던 나는 즉시 "감사합니다." 하고 답하였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그 고된 언덕길을 1.5톤 트럭에 올라 지나는 것은 참 편한 일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엔 그리도 높게 느껴지던 언덕이, 트럭을 타니 완만한 평지 같았다.
평소 석반장 아래에서 일하다가 한 날은 목수팀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어지간히 반가웠다. 석반장은 참시간에도 일을 시키고, 함바집 아줌마가 편백나무 목침이 갖고 싶다는 은근한 요구에 일도 제쳐두고 편백나무를 찾으러 다니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구태여 한심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 목침 톱질을 나에게 시킨 것이 괘씸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중학생 되는 딸이 있다고 했는데, 가정이 있는 남자가 여자 앞이라고 그 우악스러운 함바집 아줌마에게 여간 멋진 척 너스레를 떠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목수팀은 반장님을 포함하여 세 명이었다. 주차장인지 건물 외벽인지 모를 구조물을 만든다고 콘크리트를 부은 거푸집에 연신 못질을 하는 것이 일과였다. 두 시간쯤 못질을 하고 나서 아침 참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수팀 아저씨가 까만 비닐봉지에서 단팥빵, 흰 우유를 꺼내 나에게 주더니 대뜸 소주 댓병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목수반장님은 익숙하다는 듯 "거, 올라갈 땐 먹지 말라니깐. 쯧." 하시더니 자리를 일어나 뒷짐을 지고 주변을 괜히 배회하셨다. 부하직원의 일탈을 그저 묵과하지도, 그렇다고 유일한 낙일 그 행동을 뜯어말리지는 않는 행동이 선비 같다고 느껴졌다. 성격 같아서는 금하고 싶었겠지만, 매정히 다뤄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목수반장님은 오후에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사무실에 볼 일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못질을 이어나갔다. 딸꾹이는 목수팀 아저씨 곁을 지날 때면 체결 고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일과를 마치고 목수반장님 차 쪽으로 걸어갈 때, 멀리서 목수반장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온 그는 뒷짐을 풀며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두릅이다. 먹어본 적 있나?"물으셨다. 먹어본 적 없다는 내 대답에 "엄마 보고 데쳐달라 해라."라며 봉지를 손에 쥐여주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데쳐달라 하여 초장에 찍어 먹어보았다. 입안 가득히 산의 향취가 퍼졌다. 식감은 물렁하지 않으면서 단단하지도 않은, 딱 먹기 좋은 나물이었다. '이것이 봄나물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목수반장님의 성도, 이름도 모르는 나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봄이면 생각이 난다. 그는 두릅 같은 사람이었다. 겨울의 척박한 땅을 딛고 무성한 잎을 피우는 두릅같이, 고된 현장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향긋함을 유지하는 사람. 나는 그 사람 덕에 어떤 환경에 속하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쩌면 내게 16년 봄이 푸릇하고 향취 나는 시절로 기억되는 것은, 그를 만났기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