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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마사 Oct 23. 2024

지인의 오해

소개팅 필패의 역사

이번에 소개하는 사연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만 억울한 일이다. 제대로 된 소개팅도 아니었는데 한 동안 지인에게 미움을 받아 왔으니까. 


발단은 이랬다. 연말의 어느 날 친한 동생이 자신의 와이프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해서 모임을 가졌다. 당시 구성이 그 동생 부부(A와 B), 동네 형님(C), 다른 동생(D),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이었다. 한창 저녁을 먹는 와중에 B가 내게 제안을 했다. 근처에 자신과 친한 여동생이 있는데 이 자리에 부를 테니 이야기를 잘해 보라는 것이다. 정식 소개팅이 아닌 자연스러운 만남을 제안한 것이었다. 당연히 내가 마다할 일은 없었다. 잠시 뒤에 그녀가 말한 동생이 왔다. 편의상 E라고 하겠다. E는 단아한 인상의 날씬한 처자였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술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알았어야 했다. 나와 그녀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있었음을 말이다.


그 자리에서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E는 같이 사는 친구가 키가 없어서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핑계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대신 다음에 정식으로 같이 밥 먹자는 약속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C가 자꾸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왜 나만 소개해 주냐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장난인 줄 알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눈치채지는 못했었다.


이후로 E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보려는 시도는 여러 번 했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해 놓고 주선자 부부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약속시간 10분을 남기고 펑크를 낸 적도 있었다. 그녀의 집 근처에서 역시 주선자 부부와 차를 마시며 기다리는데도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남자를 만날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 싫어서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주선자 부부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럴 아이가 아닌데 이상하다는 말과 함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후부터 C가 자꾸 나를 슬슬 피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바빠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A에게 계속 연락을 했다고 한다. E가 자신의 이상형이니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대놓고 말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건 도의상 아닌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소개해준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한동안 나를 미워했던 것 같다. 어쩌다 모임에서 마주치게 되어도 이상하게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니... 나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미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후로도 C의 미움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C의 미움을 이해할 수가 없다. E가 정말로 마음에 들 수는 있다. 첫사랑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내 죄는 아니지 않은가? 답답하면 나에게 직접 말을 하던가. 자신이 만나고 싶으니 너는 양보해 달라고 하던가. 어차피 만나지도 못할 상대라 양보의 의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녀를 다시 본 것은 주선자 부부의 첫 째 돌잔치 때였다. 몇 년의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날씬하던 체구가 거대하게 부풀어 있었다. 거의 몸이 두 배쯤 늘어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A가 슬쩍 이야기해 줘서 알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남자와 헤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를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남자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한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잘 될 가능성이 없었는 상대였던 것이다. 억울한 것은 나만 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C와는 결국 화해를 하긴 했다. 화해라고 하기도 우스운 일이다.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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