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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마사 Nov 06. 2024

채식주의자라면서 고양이만 4마리

소개팅 필패의 역사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 모든 음식을 잘 먹는 사람도 있지만 해산물을 아예 못 먹거나 고기만 먹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고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들도 있다. 오늘은 채식주의자와 소개팅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전까지는 채식주의자에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실제로 만날 일도 없었을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억지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 본인의 성향은 얼마든지 존중해 줄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생각도 현실의 장벽 앞에서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번 소개팅을 주선한 것은 수달이었다. 시장일을 하던 수달이는 발이 넓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기는 한데 워낙에 다양한 분들을 만나다 보니 가끔씩은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채식주의자가 이런 케이스였다.


첫인상은 단아하니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샐러드로 하는 것을 보고 다이어트를 하는가 보다고 생각을 했다. 2차로 옮겨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본인이 채식주의자라고 소개를 했다. 처음에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먹는 것을 채식만 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반려동물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고양이를 키운다길래 그러려니 했다. 한두 마리야 뭐... 그런데 4마리를 키운다는 것이다. 사료값만 해도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료는 동물성 사료가 아닌가? 여기서 잠시 인지부조화를 느꼈다. 그래도 본인 취향이니 그러려니 했다.


다시 음식 이야기로 화제가 돌아왔다. 채식을 시작한 것은 몇 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그렇게 하게 됐다고 한다. 채식주의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고기만 안 먹는 사람도 있고 아예 채식만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잠시 채식주의자 부류를 나눠 보겠다.


세미(semi) : 채식을 하면서 닭과 같은 조류/가금류를 먹는 단계

페스코(Pesco) : 채식을 하면서 어패류까지는 먹는 단계

락토오보(LactoOvo) : 달걀, 우유 같은 유제품과 꿀처럼 동물에게서 나오는 식품까지는 먹는 단계

락토(Lacto) : 달걀을 제외한 유제품까지는 먹는 단계

비건(Vegan) : 동물에게서 나온, 혹은 동물 실험을 거친 식품을 모두 거부하는 단계


안타깝게도 소개팅 상대는 비건이었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도 샐러드를 택해서 먹은 모양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만약에 남자와 사귄다면 상대에게도 채식을 강요할 것이냐고.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각자 먹을 것을 해 먹으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사를 할 때는 각자 먹을 것을 알아서 준비해서 먹으면 된다는 거다. 잠시 멍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이 분과 잘된다고 해도 평생을 따로 식사를 준비해서 먹는다니...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왔다. 설상가상으로 고양이만 4마리다. 성향상 줄어들지는 않고 앞으로 반려 동물을 더 늘릴 수도 있을 텐데 고양이들 먹이는 동물성 사료를 줄 것이 아닌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상식선에서는 말이다.


이번에는 차였다기보다는 나 역시 에프터를 신청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만나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도 있는데 각자 먹을 것을 따로 먹어야 한다니 이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마음이 들었다면 이렇게 강하게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 안 했을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채식주의자임을 강조한 것이겠지. 어쨌든 채식주의자와의 소개팅은 첫 만남으로 끝나게 된다. 지금 다시 만난다고 해도 맞출 생각은 없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것도 좋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해야 만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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