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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가 말을 하네?

소개팅 필패의 역사

by 검마사

너무 지나친 친절은 독이 된다. 괜히 이런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이야기는 너무 지나친 친절로 망한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그 사람은 나고 망한 것은 소개팅이다. 그녀와의 처음 만남은 너무나도 좋았었다. 서로 관심사도 비슷했으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도 내게 호감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애프터를 신청했을 때 바로 성공했으니까.


두 번째 만남도 첫 번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평소 소개팅의 높은 관문이었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만남이 좋았기 때문에 그 이상을 기대해 볼만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내 오지랖이 발동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그녀가 배우 원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원빈은 아저씨 영화로 인기의 정점을 찍던 상황이었다. 마치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극장에 원빈이 무대인사를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쓸데없는 배려심이 발동하게 된다. 두 번째 만남을 마무리하면서 다음날 영화를 보자는 약속을 잡았다. 그녀와 헤어지자마자 바로 영화를 예매했다. 그녀는 원빈이 무대인사를 하러 온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다. 깜짝 놀라게 하기 위여서 원빈이 무대인사를 하러 오는 바로 전 회차를 예약했다. 다음날 만나서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티켓을 꺼내서 보여줬다. 다음 회차에 원빈이 무대인사를 온다는 사실도 그때 알려줬다. 그녀는 놀라움과 기쁨의 반응을 보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벤트가 성공한 줄 알았다. 발길을 돌려서 극장으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서 원빈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잠시간의 기다림 끝에 관객들의 환호성 속에서 원빈이 등장했다. 이때 그녀의 눈동자가 하트가 된 것을 눈치챘어야만 했다. 이를 모르는 나는 그저 원빈이 잘 생겼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 이후로 그녀와의 일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빈의 무대인사가 끝나고 바로 극장을 나섰다. 영화를 두 번 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이 뻔하기도 했으니까.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데 그녀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 탓이려니 했다. 영화를 보고 피곤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저녁을 먹고 그녀의 집 근처까지 배웅을 했다. 당연히 다음 만남을 기대했다. 이벤트까지 성공했으니 다음에는 고백을 해야지라는 즐거운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며칠 뒤에 이별의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뜬금포였다. 지금까지 분위기가 그토록 좋았었는데 거절이라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문자를 확인해 봐도 분명한 거절의 메시지였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했지만 야속하게도 그녀는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변하게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인은 원빈밖에 없다. 원빈을 보고 나를 번갈아 보니 갑자기 현타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원빈에 비하면야 난 주꾸미나 꼴뚜기처럼 보였겠지. 지나친 배려였다. 그녀가 좋아한다고 해서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괜히 영화를 보고 원빈까지 챙겨주는 바람에 잘되던 소개팅을 망치고 말았다. 주선자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고 했다. 원인이야 뭐가 있겠는가? 주꾸미로 태어난 내가 잘 못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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