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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온 승리

by 루비하루

복직을 며칠 앞둔 날,

공무상 재해 소송의 최종기일이 다가왔다.

4년 동안 이어진 싸움, 최종기일은 몇 차례나 연기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결과를 정해두고 있었다.

‘졌겠지. 그동안 그렇게 끌었던 게 증거잖아.

이제 승패는 상관없다.

살아야지. 복직도 하고, 돈도 벌어야지.’


그리고 걸려온 변호사의 전화.

“이겼어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축하드립니다.”


승소.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목이 메고, 온몸이 떨렸다.

‘이럴 거면··· 조금만 더 일찍 해주지... 나는, 죽을 뻔했는데.’

숨 쉴 틈 없이 버텨온 4년.

억울함, 분노, 좌절, 수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제 와서 이겼다고, 그 사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증거자료가 돼 있었는데.’

한참을 울었다. 감정은 뭉개져 있었다.

기쁨도, 승리감도 아니었다.

그저, 끝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2020년 5월, 나는 공무상 재해 신청을 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단순히 “나, 아파요.”라고 말하는 걸로는 부족했다.

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내가 입증해야 했다.

국가가 대신 조사해 주는 게 아니었다.

서류는 쌓이고 또 쌓였다.

-공무상 재해 신청서

-담당 의사의 소견서

-진단서

-CT, MRI 결과지

-병가 사용 기록

-인사발령 내역

-업무일지 및 초과근무 내역


하나하나 복사하고, 정리하고, 제출하는 그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었다.

몸이 아파 쉬어야 할 시간에,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입증’이라는 언어로 나를 해명하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고통은 인정되지 않는다.


나는 매일같이 자문했다.

'과연 이 병이, 일 때문에 생긴 게 맞나?

공무원이 아프면 그냥 쉬는 거지. 누가 알아주길 바라나···'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국가의 책임을 묻고 싶었다.

나는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코로나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밤을 새우고, 주말을 반납하고,

몸이 망가질 때까지 내 자리에서 버텼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건 네 일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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