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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없는 삶

by 루비하루

복직 날짜는 1월 22일.

하루하루 복직을 준비하며, 서서히 ‘회사인간’의 껍질을 다시 입고 있던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 ‘후랭이 TV 부동산’

‘전화 상담받습니다’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후랭이 TV'는 나에게 부동산 투자의 첫 문을 열어준 곳이었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경매, 투자, 매매사업자 등록···

가슴속에만 품고 있던 계획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몸이 안 좋아 퇴직도 생각 중이에요. 서울 빌라 경매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하는데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전화기 너머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판단력이 흐릴 수 있어요. 몸이 힘들면 마음도 같이 흔들리거든요. 그래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죠. 선생님이 투자했던 지방 부동산, 그게 바로 그 예입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부터 회복하세요. 주택은 상황 봐가면서 정리하시고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냉정함’이었다.




그 시기,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싶었다.

누군가 내 상황을 다 들여다보고, 냉정하게 조언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세이노님께 메일을 보냈다.

직장에서의 밀려남, 지지부진한 소송, 투자 실패, 불안한 앞날까지━

길게, 조심스럽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며칠 뒤 도착한 답장.

“무슨 힌트를 주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끝.”

처음엔 당황했고, 잠시 멍해졌다.

그런데도, 그 한 줄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후 선생님은 “더는 메일을 받지 않겠다”는 공지를 올리셨고, 나는 감사 인사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

그저 그 문장 하나를 마음속에 오래 붙잡고 있었다.

‘무슨 힌트도 줄 수 없는 삶.’

내 상황이 그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는 걸, 누군가 정확히 짚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조금 덜 외로워졌다.





광화문 한가운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위엄 앞에 섰다.

수많은 시련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약해지지 않게 해 달라고. 그 기개를, 감당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를,

나에게도 달라고.'


돌아오는 길, 광명시장에 들어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으로 몸을 녹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 속에서 마음도 풀렸다.

북적이는 시장 골목,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다시 일어설 이유를 찾곤 했다.

그 모든 장면이 내게 말했다.

그냥 현재를 살아내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그렇게 나는 또 하루, 버틸 힘을 얻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고통을 견디는 것도, 삶을 이어가는 것도 거창한 신념이나 철학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이어가는 그 마음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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