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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다시 나를 부른다

by 루비하루

6개월 진단서를 인사과에 제출했다.

우울, 공황장애로 인한 질병휴직.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어.

그 사무실,

그 사람들,

나를 조롱하고 방치했던 그 자리로는.’

그렇게 결심했다.

휴직 후 며칠 동안 거의 잠만 잤다.

아니, 잠이라기보다는 의식 없이 쓰러져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아침마다 휴대폰 알람이 정확히 7시에 울렸다. 출근 시간에 맞춰져 있던 알람이었다.

“삐삐삐삐━”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그 소리에 눈을 떴지만, 몸은 일어나지 않았다. 알람을 끄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이유도 없었다.

‘오늘은 꺼놔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음 날도 알람은 또 울렸다.

삭제할 의지도, 의미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흘렀다.

알람이 울리고,

듣고,

끄고,

다시 잠들었다.

열흘이 넘도록, 똑같은 날이 반복되었다.

세상은 움직였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오직 고통 없이 쉬기 위해서만.


그러다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 공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느리게, 비틀거리며, 한 시간 정도 걷는다. 숨이 찼고, 어지러웠고, 발목이 뻐근했지만 그래도, 걸을 수 있다.

아직 40대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경매 책을 샀다.

공인중개사 강의를 들었다.

블로그에는 재건된 일상을 적기 시작했다.

해외 구매대행도 시작하려고 정보를 모았다.

뭐든, 하나라도 되기만을 바랐다.

매일 공부하고, 검색하고, 정리하고, 실습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인생이 되리라 믿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경매는 자본이 없었고, 유료 사이트에 백만 원을 결제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공인중개사 평생 회원권을 결제했지만, 내용이 어려웠다.

블로그는 조회 수 20도 넘지 않았고, 구매대행은 사기 같았다. 강의 팔이와 프로그램 팔이만 넘쳐났다.


초조함이 밀려왔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2개월도 버티기 어렵다.

그리고, 어느 날 도착한 문자 한 통,

[인사팀입니다. 복직 여부 회신 바랍니다]

심장이 턱 내려앉았다.

고민이 밀려왔다.

며칠 뒤 전화가 울렸다.

“복직 의사 있으신가요?”


'복직'


돌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 자리는 나를 병들게 했고,

모욕했고,

쓰러지게 만들었는데···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고,

어디서도 수익을 만들지 못했다.

문제는 결국 돈이었다.

휴직수당은 없었고, 잔고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냈다.

3개월 전 실수로 회계처리를 잘못해 100만 원을 환수당했고, 연가보상비도 토해냈다.

지방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실패로 다른 임대한 집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보증보험 미가입으로 과태료 430만 원이 부과되었다. 세입자 소송에서 지면 천만 원을 또 물어줘야 한다.

목덜미를 죄는 듯한 압박감.

이건 굴욕일까, 생존일까.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가 뭘 선택하든, 이번엔··· 내 뜻으로 정한다.’




1월 15일, 정신과 진료실.

“복직하고 싶습니다. ‘정상 업무 가능’ 진단서가 필요합니다.”

의사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동안 많이 회복되셨네요. 써드릴게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온몸에 번졌다.

“일을 하면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체념도, 설렘도 없이.

그저, ‘살기 위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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