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소송을 위한 답변서를 작성하는 일은 외롭고 고된 싸움이었다.
마침 긴 추석 연휴였다.
아침마다 커피를 몇 잔이고 마신 후, 하루 8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소장을 써 내려갔다.
오후 4시가 되면 공원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걷고, 또 걸으며 외쳤다.
아니,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도와주세요.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건 내 재판이다. 내 재판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공원 한편에서 색소폰 연주자가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를 연주하고 있었다. 원래 그 곡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선율이 바람을 타고 흘러와 묘하게 마음을 적셨다.
낯선 외로운, 답답한 억울함, 끝없는 싸움 속에서도 그 노래는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렸다.
슬프지만, 아름다웠다.
매일 같은 공원, 같은 시간.
내 앞에서 꾸준히 뛰는 여성이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다. 규칙적인 숨소리, 흔들리는 포니테일.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그녀는 마치 이 공원의 시간표 같았다.
나는 걷고, 그녀는 달렸다.
그 간격은 늘 같았다.
그녀가 멈춰 선다면, 나도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도 무언가에서 도망치거나, 무언가를 이기기 위해 달리는 걸까’
공원을 찾는 사람들 모두 그랬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위해,
누군가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누군가는 나처럼 마음을 붙들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었다.
각자의 고통,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이 공원을 돌고 도는 것이었다.
그때, 조금만 달랐다면
승진은 정말 코앞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는지도 모른다.
눈앞에 잡힐 듯 보이던 것이,
손끝에서 스르르 미끄러지는 그 감각.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조금만 덜 몰아세웠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만 더 참았더라면.
나만 덜 책임졌더라면.
나만 조금 더 이기적이었더라면.
휴직이 아니라,
병가로 버텼다면.
진단서 하나를 위해 정신과를 전전하며 문턱에서 거절당하는 모욕은 없었을까.
“6개월 진단은 어려워요.”
그 말이 돌처럼 가슴에 박혔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땐 몰랐다.
사람은 망가질 때,
스스로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망가진 줄 모른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