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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승인

by 루비하루

2020년 10월.

공무상 재해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우편 봉투를 여는 손이 떨렸다.

나는 아직 치료 중이었고, 몸은 온전치 않았고, 마음은 지쳐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도 담담했다.


'업무와 질병 간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음.'


그 문장은 곧,

‘국가는 당신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나는 아픈 게 아니라, ‘불성실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국가는 나의 병을 개인적 체질, 유전, 혹은 단순한 피로 누적으로 돌려버렸다.

야간근무, 격무, 코로나 대응···

그 모든 시간은 공문서 한 장에 의해 지워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나는 버텼는데, 결국 아무도 몰라주는구나···”

정적만이 가득했다.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저 사람은 그냥 병이 난 것뿐이지. 업무 때문은 아니야.”

그 말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불승인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스스로가 초라하고 무가치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국가는 나를 외면했고, 병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 곁에는 묵묵히 함께해 주는 가족이 있었다.

“다시 신청하자.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잖아.”

“그 사람들이 모르는 거지. 엄마, 우리는 다 알아.”

가족은 단 한 번도 ‘포기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주저앉지 않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주었다.

그 말들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병과 함께 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싸우기로 했다.

혼자였다면 무너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켜보는 가족이 있었기에, 일어설 이유가 생겼다.




불승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나는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행정소송’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공무상 재해 ‘불승인’ 통보일로부터 행정소송 제기까지는 단 90일.

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아팠고, 마음은 지쳐 있었다.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처음엔 막막했다.

나는 행정사, 변호사, 법무사 블로그를 닥치는 대로 검색했다. 관련된 글을 수십 개 읽고, 상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공무상 재해 불승인은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안은 인과관계 증명이 거의 불가능해요.”

“문제가 복잡하네요. 우리 사무실에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절망감은 깊어졌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번 주 안에 못 하면, 기한은 끝나는데···’

벼랑 끝에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한 법무법인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을 잡고, 불승인 결정문, 진단서, 근무기록, 병가 내역을 챙겨 직접 사무실을 찾았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변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승소 확률, 저는 70% 이상이라고 봅니다. 이건 싸울 만합니다.”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계약하겠습니다. 계약금 550만 원,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변호사님만 믿고, 저는 일상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냉정히 말하면, 나는 전형적인 ‘의뢰인 호구’였다.

계약금을 깎을 수도 있었고, 계약서를 더 꼼꼼히 검토할 수도 있었고, 다른 법무법인과 비교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누군가 나 대신 싸워주기를 바랐다.

몸도 마음도 이미 고장 난 상태에서 그 한마디 '승소확률 70%'는 내 모든 판단력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날의 나는 그 변호사를 ‘구원자’처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법은 결국 ‘나’ 자신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약은 끝이 아니었다.

진짜 긴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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