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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이상 확신합니다

by 루비하루


감마나이프 시술 이후, 병명은 ‘청신경초종’에서 ‘경계성 종양’으로 바뀌었다.

종양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보험사 세 곳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놀랍도록 일치했다.

“경계성 종양은 보장 대상이 아닙니다.”

“해당 질병은 암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3군데 모두 지급 불가. 경계성 종양은 보장 금액도 적었지만, 그마저도 줄 수 없다는 통보였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 사회는 이렇게도 쉽게 외면하는구나.’

나는 두 군데 보험사에는 직접 전화했다. 진단서와 영상 자료를 준비해 따져 물었고, 결국 손해사정인이 나와 면담을 진행했다. 그제야 두 곳은 보험금 지급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공무원 단체보험사는 달랐다.

진단서와 의료기록을 제출했음에도, 다 한 번의 검토도 없이 거절했다.


나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또다시 ‘불가’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법이, 제도가, 그리고 보험도 내가 아플 때 반드시 도와주는 건 아니라는 걸.

사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가운 곳이었다.




개두술과 감마나이프 이후 나는 2년 만에 복직했다.

‘배려’는 없었다.

나는 격무 부서에 배치되었고, 일은 쉴 새 없이 몰려왔다.

몸은 여전히 회복 중이었고, 집중력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픈 사람’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수술 직후 한동안 처음 계약했던 변호사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10시간의 개두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시기, 나는 법정이 아니라 병상에 있었지만, 변호사는 병상의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대신 그 아래 나와 소통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몇 번씩 바뀌었다. 매번 새로운 사람에게 사건 진행에 대해 물어야 했다.


복직 후 겪은 격무, 무시, 고립감은 나를 다시 벼랑 끝으로 몰았다.

그때 나는 화가 나 있었다.

이 모든 고통을 견디며 싸우고 있는데, 재판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나는 결국 변호사에게 화를 냈다.

“나는 이렇게 무너지는데, 재판은 언제 끝납니까?

승소는 가능한가요? 아니면 그냥 시간만 끌고 있는 겁니까?”

그때 소통 담당 변호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이 재판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진 않았습니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믿고 있었다.

계약 당시, ‘70% 이상 확신합니다’라는 그 말.

“그때 계약한 변호사님이 ‘승소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승소가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담당변호사님은···

결국 계약이 목적이었군요.

사람 인생 걸린 재판을, 그렇게 시작하셨나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재판은 내 인생이었지만, 그들에겐 단지 ‘하나의 계약’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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