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기,
‘퇴직’이라는 단어가 현실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재판은 지지부진했고,
직장의 시선은 차가웠다.
‘혹시 정말,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두려움이 목을 조여왔다.
그렇게, 무리해서 매수한 지방 부동산.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를 배신했다.
임차인과의 분쟁,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나씩 틀어지며, 경제적 위기감은 목을 조여왔다.
재판도, 병도, 일도, 돈도···
모든 것이 등을 돌리는 듯했다.
그 무게는 직장 안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보고서를 잘못 쓰고, 회의 내용을 빠뜨리고, 메일을 놓쳤다.
“왜 자꾸 이래요?”
“이 정도 일도 못 하면 어떻게 해요?”
말은 칼처럼 날아들었고, 나는 껍질만 남은 사람이 되어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나는 세 곳의 병원을 돌았다. 그중 단 한 곳만이 내 고통을 제대로 바라봐주었다.
의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번아웃도, 우울도 아닙니다. 이건 생존을 위한 ‘최후의 경고’ 상태입니다. 단순한 휴식으로는 안 됩니다. 지금 필요한 건, 회복입니다.”
그 말은 벼랑 끝에 매달린 내 손을 붙잡아준 유일한 위로였다.
그 병원에서 6개월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그건 단순한 휴직용 서류가 아니었다.
세상에 남아 있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내가 나에게 내린 ‘살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진심으로 끝을 생각했다.
어느 날 밤, 차 안에서 중얼거렸다.
‘지금 여기서··· 그냥 끝내 버릴까.’
그때, 한 문장이 떠올랐다.
“죽으면 억울함조차 사라진다. 살아 있어야 말할 수 있다.”
그 말이, 나를 겨우 붙잡았다.
죽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살 수도 없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경계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