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길어졌다.
법정에서 판사는 자주 말했다.
“감정 결과가 모호합니다. 신경외과 감정의는 인과성을 부정하지만,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는 완전한 배제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곧, 판사님도 ‘결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무너지고 있었고,
법도, 사람도 내 편이 아니었다.
재판은 점점 불리하게 흘렀다.
감정의뢰는 여러 차례 들어갔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는 '인과성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한 줄을 얻기 위해 수십만 원의 감정 비용이 들었지만, 돌아온 결과는 내 병을 다시 나의 책임으로 돌리는 말뿐이었다.
마지막 기대마저 서서히 꺼져가던 어느 날. 기적처럼 한 통의 문서가 도착했다.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가 외국 논문 자료와 스트레스-종양 관련 임상 사례를 인용해 감정서를 자발적으로 다시 제출한 것이다.
우리 쪽에서 다시 요청하지 않았는데, 먼저 새 감정서를 보내온 것이다.
그 문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고의 직무 환경, 증상 발생 시점, 병의 진단 경과 등을 고려했을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한 인과성이 인정된다.”
변호사는 말했다.
“이런 일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보통 전문가는 한 번 낸 의견을 번복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느꼈다.
‘누군가는, 정말로 이 싸움을 나와 함께하고 있구나.’
그 교수님은 나를 만나지 않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적도, 내 눈빛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내 서류, 내 증상, 내 싸움을 ‘자료’가 아닌 ‘한 사람의 삶’으로 이해해 주셨다.
그 감정서 한 장은 승소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고, 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킨 ‘신뢰의 증거’였다.
그 문서에 담긴 고민과 책임감은 내게 승소 이상의 위로였다. 법이 나를 인정하기 전에, 그분이 나를 먼저 믿어주셨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이 글에 남깁니다.
“교수님께서 제게 써주신 그 감정서 한 장이, 한 사람의 생을 살려주셨습니다.
이 글은 그 고마움의 기록입니다.”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소통을 담당하던 변호사님이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마음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변호사님의 대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배웠습니다.
의뢰인님도 꼭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그 순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꼭 승소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나는 믿었다.
승소만 하면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소송은 그 후에도 1년 반이 더 걸렸다.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격무에 시달리며, 두 번째 휴직을 거쳐 다시 삶의 바닥을 경험하는 동안,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했다.
“이겨내세요.”
그 말은 단지 재판에서 이기라는 뜻이 아니었다.
패소하더라도 살아내라는 뜻이었다.
‘결과가 어찌 되든, 당신은 다시 살아야 하니까요.’라는 의미였다는 걸.
그 변호사님은 수많은 산재 사건을 수임한 산재 전문 변호사였다.
수많은 승소와 패소, 아픔과 분노를 지켜봤기에,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승소든 패소든, 그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이겨내야 했다.
질병과 고통을 넘어서, 장애와 낙인을 안고도 다시 살아야 했다.
이 세상에서 ‘재해를 입고 살아간다’는 건 단지 병을 앓는 것이 아니었다.
끝없이 설명하고, 증명하고,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