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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병보다 깊게 파고들었다

by 루비하루

공무상 재해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조직 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쉬다 나온 사람.’

‘쉬운 자리만 골라간다.’

그런 낙인과 뒷말이 따라붙었다.

심지어, ‘이혼했을지도 몰라.’

악의 없는 듯 흘러나온 소문까지 들려왔다.


불과 네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나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서연 씨, 힘내요.”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재기? 불가능할걸.’ 하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 숨어 있었다.

처음엔 위로 같았던 말들 이제는 벽이 되었다.

나를 걱정하는 척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내가 다시 올라오는 걸 반기지 않았다.

내가 버텨낸 것보다, 버텨낸 이후를 더 두려워한 사람들.

동정은 시기가 되었고, 시기는 조용한 방해가 되었다.

더는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그들만의 견고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내가 아팠다는 걸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아픈 몸으로도 다시 걸어 나오는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병보다 무서운 건 조직의 기류였고, 암보다 무서운 건 인간의 냉소였다.




정기 인사

“신임 팀장 - 김진아.”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진아면··· 이서연 선배 바로 아래 후배 아니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멍해졌다.

김진아.

10년도 채 되지 않은 후배.

이제는 나의 직속 팀장이 되었다.

며칠 후, 자리 재배치.

나는 구석진 자리, 비핵심 업무 담당으로 밀려났다.

누가 봐도 내려진 자리였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진아와 마주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배··· 어색하죠? 저도 많이 부담돼요. 근데··· 아시잖아요. 조직이란 게 그런 거니까.”

나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진아는 눈을 피하며 덧붙였다.

“그래도··· 도와주세요. 선배 경험, 우리 팀에 꼭 필요해요.”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당신은 올라갈 수 없으니, 밑에서 버텨 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밤늦게 거울을 보았다.

뇌수술 자국은 머리카락에 가려졌지만 표정엔 고된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책상 서랍을 열었다.

병원 진단서, 소송 판결문, 약봉지들 위에

오늘 날짜를 적은 메모지를 올려두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두렵지만 두려움과

함께 한다는 것이고,

힘을 낸다는 것은

힘들지만, 힘듦과 함께 간다는 것이다.

두렵고 힘이 들어서

도저히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면

나와 맞지 않는 일이니

그만두는 편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남는다면

그럼에도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면

그건 두려움, 힘듦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 글마음 -


나는 조용히 되뇌었다.

‘다시 무너지지 말자.’

‘언젠가는 내가 다시 나를 증명하리라.’


그러나 그날 밤, 잠은 오지 않았다.

심장은 조용히, 그리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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